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어제 뉴욕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조만간 재개될 북-미 비핵화 실무협상 관련 현안을 논의했다. 한미 정상은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을 담은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합의정신이 유효함을 재확인했다고 청와대는 밝혔다.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소강상태였던 북-미 비핵화 협상의 불씨를 살려가자는 데 의견을 모은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좋은 관계라는 점을 거듭 강조하면서도 자신이 언급한 ‘새로운 방법’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거론하지 않았다. 문 대통령과의 회담에선 구체적인 방법론이 오갔을 가능성이 높지만 실무협상을 앞두고 협상 전략을 노출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새로운 방법’으로 비핵화 전 행동, 즉 대북제재 해제를 고려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회담에서도 개성공단, 금강산관광 재개 문제는 논의되지 않았다. ‘선비핵화, 후보상’의 리비아 모델을 주장했던 존 볼턴 전 국가안보보좌관이 경질되자 트럼프 행정부가 단계적 비핵화와 제재 해제를 연동할 것이란 관측이 흘러나왔는데 이를 일축한 것이다.
그간 북한은 단계적 비핵화를 요구해왔다. 하지만 1, 2차 북핵 위기 때도 북한은 단계적 비핵화를 고집하면서 핵 동결 초기 단계의 사소한 합의만 이행했고 그 대가로 반대급부만 챙긴 뒤 결정적 단계가 되면 합의를 파기했다. 이번에도 영변 핵시설 포기로 대북제재를 먼저 푼 뒤 핵 동결 수준에서 어정쩡한 합의가 이뤄진다면 북한의 핵 보유를 기정사실화하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
이번 회담에서 두 정상이 한미동맹 강화에 한목소리를 낸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그 정도 수사(修辭)로 동맹 균열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긴 어려울 것이다. 문 대통령은 향후 3년간 미국산 무기 구매 계획을 설명했고,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 대한 의견도 조율했지만 양국 간 입장 차이가 워낙 커서 합의 도출까지는 난관이 예상된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결정에 대한 논의도 없었다고 한다. 민감한 현안은 덮어둔 채 대외적 발표만 동맹 강화라고 한 것은 아닌지 의문이다. 동맹은 말로만 그쳐선 안 된다. 분명한 정책 조율과 행동이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