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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눈물[왕은철의 스토리와 치유]〈107〉

입력 | 2019-09-25 03:00:00


아버지는 설날이 가까워질 때마다 자신이 저축한 약간의 돈을 작은 단위의 빳빳한 지폐로 바꿔 숨겨 놓았다. 그리고 설날이 되면 아들과 딸, 조카들에게 한 장씩 나눠줬다. 그러던 어느 정월, 그는 돈을 나눠주다가 몇 장의 지폐가 없어진 것을 알았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막내아들이 범인이었다. 며칠 후 아버지는 아들을 불러 돈을 훔쳐갔냐고 물었고, 아들이 부인하자 꿇어앉혔다. 그리고 또 부인하자 뺨을 때렸다. 계속 부인하던 아들은 여러 번 맞고 나서야 돈을 훔쳐 빵을 사먹었다고 실토했다. 그러자 아버지는 더 이상 때리지 않고 말없이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다시 고개를 돌렸을 때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언젠가 그 아들이 아이들과 함께 남의 집 오이를 훔쳐 먹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몇 아이들이 돈까지 훔쳤다. 주인은 아이들의 집을 찾아다니며 오이를 먹은 건 괜찮으니 오이를 판 돈만은 돌려달라고 했다. 한 해 먹을 양곡 값이라고 했다. 주인이 돌아가자, 아버지는 아들을 범인으로 단정하고 마당에 꿇어앉히고 추궁했다. 아들은 모질게 맞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억울했다. 그는 너무 억울한 마음에 저녁밥도 먹지 않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데 한밤중에 아버지가 그를 깨우고 애원하듯 물었다. “너 정말로 남의 돈 훔치지 않은 거지?”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아버지는 두 손으로 그의 뺨을 가볍게 쓰다듬더니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그리고 잠시 후 밖으로 나가 아들이 무릎을 꿇고 얻어맞았던 마당 귀퉁이에 놓인 의자에 앉아 허공을 바라보았다. 아들이 다시 잠이 들었다가 중간에 깨니 아버지는 밤이슬을 맞으며 그대로 앉아 있었다.

세월이 흘러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 뜻밖에도 아버지한테 맞았던 일이 아들에게는 따뜻한 위로가 되었다. 그는 아버지가 그리울 때마다 자기도 모르게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노벨 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중국 소설가 옌롄커(閻連科)의 실제 이야기다.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