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정거장에서 지구를 보면 타오르는 불길이 관찰된다고 한다. 미국 텍사스주 이글퍼드와 퍼미언, 노스다코타주 바컨 등 셰일가스전에서 나오는 불길이다. 세계 최대의 천연가스 소비국인 미국조차 다 사용하지 못할 정도로 생산량이 많아, 남는 가스를 태워버리고 있기 때문이다. 저장하려면 부피 제약을 극복해야 하는데, 200배 이상의 압력을 가해야 하는 등 비용이 많이 들어 차라리 태워서 재고량을 줄이는 게 낫다고 한다.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국가스공사가 2025년부터 15년간 연간 158만 t의 미국산 셰일가스를 수입하기로 했다. 이미 2017년부터 20년간 연간 280만 t의 수입 계약을 맺었는데 또 추가한 것이다. 가스공사는 중동 중심의 수입처 다변화 차원이라고 밝혔지만, 셰일혁명으로 세계 최대 원유 생산국가가 되면서 석유·가스 수출량 늘리기에 골몰해 있는 트럼프 행정부에 선물 보따리를 줬다는 분석도 나온다.
▷셰일은 작은 모래나 점토 크기의 입자로 구성된 층상 구조의 퇴적암이다. 암반 사이사이에 오일(oil)과 천연가스(LNG)를 머금고 있다. 원래 채산성이 낮아 이용되지 않았는데, 2008년 미국에서 새 채굴 기법이 개발되면서 각광받기 시작했다. 미국에는 양을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셰일층이 있는데, 바컨 셰일은 넓이가 한반도의 4분의 1이 넘는다고 한다.
▷미국의 지정학 전략가 피터 자이한은 저서 ‘셰일혁명과 미국 없는 세계’에서 “에너지 수입이 필요 없게 된 미국은 국제사회의 경찰 역할을 포기하고, 세계는 무질서에 빠질 것”이라 전망했다. 스스로 수송로를 확보할 수 없는 국가들이 에너지 수급 불안에 빠지면서, 이를 확보하기 위한 군비 경쟁과 합종연횡을 벌인다는 것이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시리아 철군을 감행하며 “미국은 더 이상 중동의 경찰이 되길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70년간 유지됐던 세계 에너지 질서에 셰일혁명이 예기치 않은 변화를 몰고 오고 있다.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