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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 비틀어 만들어 내는 금융 일자리[현장에서/장윤정]

입력 | 2019-09-25 03:00:00


지난달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금융권 공동채용박람회’에는 은행, 보험사 등 총 60개 금융회사가 참여했다. 은행연합회 제공

장윤정 경제부 기자

“줄여도 시원치 않은 마당에 자꾸만 사람을 더 뽑으라고 하니….”

신한은행은 최근 하반기에 380명을 더해 올해만 총 1010명을 선발한다는 ‘통 큰’ 채용 계획을 발표했다. 우리은행도 질세라 상반기 300명을 선발한 데 이어 하반기 450명을 선발해 올해 750명을 채용키로 했다. 청년들의 취업난을 생각하면 반가운 소식이지만 자발적인 채용 확대라기보다는 금융당국의 ‘팔 비틀기’에서 비롯된 측면도 있어 뒷맛이 영 개운치 않다.

요즘 금융권은 금융당국의 채용 압박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8월 27일 금융권 공동채용박람회에서 최종구 당시 금융위원장은 “일자리 창출을 위해 금융의 역할이 중요하다”며 시중은행장과 금융회사 사장들을 향해 마지막까지 채용 확대를 독려했다. 금융당국이 집계하는 ‘일자리 성적표’ 공개도 초읽기에 들어갔다. 앞서 6월 은행권 일자리 창출 효과를 측정하겠다고 밝힌 금융위원회는 조만간 이를 발표할 예정이다. 금융위는 “개별 은행의 순위를 매기는 게 아니라 은행권 전반의 일자리 창출 현황을 살펴보고 우수사례를 공개하겠다”고 해명하지만 은행들 입장에서는 신경이 안 쓰일 수가 없다. 청년실업이 좀처럼 해결될 기미가 없자 정부가 금융회사들을 전방위적으로 압박하며 일자리 확대를 종용하고 있는 것이다.

규제산업인 금융업의 특성상 금융회사들은 당국의 눈치를 보게 된다. 금융당국은 감독과 검사 기능을 동원해 금융회사를 상시적으로 압박하고 심한 경우 최고경영자(CEO) 인사에도 직간접적으로 개입한다. 정부의 손아귀에 목줄이 잡혀 있는 은행들로서는 당국의 어떤 요구에도 항상 고분고분할 수밖에 없다. 결국 은행들은 사람이 필요하지 않더라도 ‘마른 수건’이라도 짜내듯 화끈한 채용계획을 내놓는다. 김태영 은행연합회장도 23일 윤석헌 금융감독원장과 시중은행장이 모인 간담회에서 “은행권은 금년 5000여 명 수준을 신규 채용하며 일자리 창출을 위한 노력을 지속할 계획”이라고 화답했다.

하지만 이 같은 모습은 디지털 금융의 확산이라는 산업 트렌드를 정면으로 역행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모바일뱅킹이 대세가 되면서 더 이상 예전과 같이 지점이나 인력을 많이 거느릴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저금리로 인해 은행들의 수익성 악화도 우려되고 있다. 무리한 신규 채용은 대규모 희망퇴직으로 이어져 은행들의 비용만 늘리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혁신과 경쟁력 강화를 외치다가도 ‘인력 늘려라’, ‘수수료 낮추라’고 개입하는 것이 금융당국”이라는 볼멘소리가 금융권 곳곳에서 터져 나온다. 앞으로도 계속 이런 식이라면 ‘관치(官治) 금융’이라는 오명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장윤정 경제부 기자 yunj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