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남부터미널 건물 출입구에 설치된 점자블록이 카펫으로 덮여 있다. 고도예 기자 yea@donga.com
고도예 사회부 기자
이렇게 말하던 김훈 씨(47)의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 김 씨는 웃고 있었는데 그 웃음에는 체념이 섞여 있었다. 김 씨는 이런 한마디를 남기곤 서울 서초구 고속버스터미널 건물을 나섰다. 앞을 전혀 보지 못하는 김 씨는 스스로의 힘으로 고속버스를 타고 고향에 갈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기자와 함께 고속버스터미널을 찾았다. 추석 연휴를 이틀 앞둔 이달 10일의 일이었다.
이날 김 씨는 고속버스터미널 안에서 40분 가까이 헤매야 했다. 하지만 버스 승차권은 끊지 못했다. 건물 출입문 앞에 설치된 점자블록이 매표소까지 연결돼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 씨는 당황한 표정으로 40여 분간 시각장애인용 흰 지팡이로 바닥을 두드렸다.
서초구는 내년부터는 시각장애인도 고속버스를 타고 귀성하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서울고속버스터미널 경부선과 호남선, 남부터미널 3곳의 시각장애인 편의시설을 점검하겠다고 했다. 현장을 점검한 구는 19일 이들 터미널 운영사 3곳에 “올해 안에 시각장애인 편의시설을 개선해 달라”는 공문을 보냈다. 공문을 받은 경부선 운영사는 “올해 말까지 점자블록을 제대로 설치하겠다”고 답했다. 호남선 운영사는 “점자블록을 설치하는 대신 건물 내 점자 안내표지판에 비상호출 스위치를 설치해 시각장애인들이 안내 직원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전달했다.
하지만 서울의 고속버스터미널에 점자블록이나 비상호출 스위치가 갖춰진다고 해서 시각장애인들이 버스로 귀성하는 데 불편함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김 씨가 서울고속버스터미널 호남선에서 귀성 버스를 타면 전남 강진종합버스터미널에 내린다. 내린 뒤엔 승강장에서 건물 출입구를 거쳐 택시 등 다른 교통수단으로 갈아타야 한다. 서초구만 터미널 3곳의 시각장애인 편의시설을 개선한다고 해서 김 씨의 ‘불편 없는 귀성’이 보장되지 않는다. 정부 차원에서 전국 버스터미널을 점검하고 시각장애인 편의시설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지금은 각 구가 관할 지역 고속버스터미널의 점자블록 설치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각 터미널 운영사에 시정을 요청해야 한다. 이런 방식으로 시각장애인의 ‘버스 귀성’을 가능하게 하려면 앞으로 추석 연휴를 몇 번이나 더 보내야 할지 모른다.
고도예 사회부 기자 ye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