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현장을 가다] 50개국 대상 온라인관광비자 허용, 親관광 강조하는 사우디 공항 관광으로 일자리 100만 개 창출… 정세 불안 등은 극복 과제
국경일(23일)을 하루 앞둔 22일 사우디아라비아 제2도시 지다의 해안도로 공원이 화려하게 장식돼 있다. 입구 벽에는 ‘최고를 지향하자’라는 슬로건이 붙어 있다. 지다=이세형 특파원 turtle@donga.com
이세형 카이로 특파원
비전 2030은 ‘미스터 에브리싱’으로 불리는 무함마드 왕세자가 직접 기획해 2016년에 발표한 중·장기 경제·사회 발전 전략이다. 석유 의존도 줄이기와 관광산업 육성 같은 다양한 개혁·개방 정책을 담고 있다. 이를 통해 사우디를 현대적이고 국제적인 국가로 변화시키겠다는 게 비전 2030의 목표다.
○ 본격적인 사우디 관광 시대 개막
지다에서 관광 사업을 하며 대학 관광학과의 겸임교수로도 활동 중인 사미르 코모사니 씨는 비전 2030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목소리를 높였다. 사우디의 관광산업은 경천동지할 수준의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27일 발표 예정인 50여 개국 국민들에 대한 온라인 관광비자 발급 정책은 국제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무슬림의 성지 순례(메카와 메디나 방문)를 위한 비자 외에는 사실상 관광비자가 없었던 나라였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면, 사우디 역사상 최초로 관광비자를 도입한 것이다.
지금까지 사우디는 업무용 혹은 가족방문용 비자만 외국인들에게 제한적으로 발급해 왔다. 코모사니 씨는 “외국인의 자유로운 방문을 허용하는 것만큼 큰 개방도 없지 않으냐”며 “사우디 사회가 변화를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사우디는 이 같은 관광 문호 개방을 통해 2030년 연간 약 1억 명의 관광객을 유치할 계획이다. 지난해 프랑스를 찾은 관광객(약 9000만 명)을 웃도는 목표를 세운 것. 현재는 성지 순례자 약 1200만 명을 중심으로 총 1600만 명 정도가 매년 사우디를 찾고 있다.
사우디 정부와 관광업계는 한국 미국 영국 일본 중국 등 11개국을 관광객 유치 중점 국가로 선정해 더욱 적극적으로 관련 마케팅 활동을 펼칠 예정이다. 이번 관광비자 정식 도입을 앞두고 사우디가 온라인에서 펼친 마케팅도 눈길을 끌었다. 구체적인 설명 없이 홍해의 파란색 바다 위에 떠 있는 군도(群島) 사진에 ‘여기는 몰디브가 아닙니다(This is not the Maldives)’란 메시지를 담은 홍보물을 퍼뜨렸는데 적잖은 화제가 됐다.
사우디 관광산업을 활성화시키기 위한 변화가 가장 잘 드러난 곳으로 공항이 꼽힌다. 외국인 관광객이 처음 사우디를 경험하는 곳인 만큼 최대한 좋은 이미지를 주는 방식으로 공항 환경을 바꾸겠다는 방침이다.
킹압둘아지즈 국제공항은 입국심사 담당 공무원에 대한 친절도 평가를 1년 반 전부터 시작했다. 입국심사 과정에서 담당자가 얼마나 친절했는지를 평가하는 전자기기가 심사대 옆에 놓여 있어 △웃는 얼굴 △무표정한 얼굴 △찡그린 얼굴 모양의 버튼 중 하나를 누를 수 있다.
사우디 안팎에선 이 나라 국제공항의 입국심사가 워낙 오래 걸리고 공무원들도 불친절하다는 평가가 많은 것을 개선하기 위한 조치라는 분석이 많다. 공항 관계자는 “비전 2030에서 관광산업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공항도 바뀌기 시작했다. 몇 년 전만 해도 솔직히 이런 제도가 도입될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200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지로 선정된 고대 유적지 ‘마다인 살레’와 독특한 사막의 자연 풍광을 갖추고 있는 사우디 북서부 도시 알울라 공항은 방문객이 도착할 때마다 공항 전체가 시끌벅적해진다. 방문객들이 비행기에서 내려 공항 건물로 들어오면 전통 음악 연주를 중심으로 한 환영 공연과 함께 기념품, 음료수, 초콜릿 등을 나눠 주는 이벤트가 진행되기 때문이다.
○ 가장 빠르게 궤도에 올릴 수 있는 신(新)산업
23일 찾은 수도 리야드의 국립박물관은 관람객으로 붐볐다. 최근 사우디는 관광산업 육성을 중장기 국가발전 전략의 핵심 목표 중 하나로 삼고 있다. 리야드=이세형 특파원 turtle@donga.com
사우디 현지 소식통은 “IT, 신재생에너지, 바이오 같은 분야에 아무리 파격적인 투자를 한다고 해도 쉽게 결과가 나오겠느냐”며 “하지만 관광산업의 경우 성지 순례를 기본으로 고대 유적지, 홍해와 사막의 뛰어난 자연 경관, 상업시설이 풍부한 대도시 등 성공 요인을 모두 갖추고 있어 조금만 투자해도 곧바로 궤도에 올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석유와 공공부문 외에 젊은층을 위한 일자리가 부족한 것도 사우디가 관광산업에 관심을 갖는 이유다. 사우디 관광·국가유적위원회(SCTH)는 2030년까지 100만 개 정도의 새로운 일자리가 관광산업 활성화로 창출될 것을 기대한다. 현재 국내총생산(GDP)에서 3%를 차지하는 관광산업이 2030년에는 10%까지 성장할 것으로 보고 있다.
관광산업에 대한 젊은층의 관심도 커지고 있다. 대학 관광 관련 학과에는 해마다 지원자가 늘어나고 있다. 사우디 명문대 중 하나인 킹압둘아지즈대는 이런 기류 속에서 관광학과를 관광대학으로 확대·개편했다. 사우디 여성으로는 네 번째로 정식 관광 가이드가 된 마샬리 씨는 “학생들에게 점점 더 매력적인 직업으로 인정받고 있다”며 “성인 중에는 다른 업종에서 일하다 관광업으로 옮기려는 사람이 꽤 많다”고 말했다.
고교 영어 교사로 활동하다 관광 가이드로 전직한 이브라힘 씨는 사우디 정부의 관광 인력에 대한 투자를 큰 장점으로 꼽았다. 그는 “가이드들에게 수개월간 미국과 유럽의 관광산업 강국에서 교육을 받도록 하고 있다”며 “알울라 지역의 경우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정식으로 교육 과정을 밟은 관광 가이드가 10여 명이었지만, 지금은 30여 명에 이른다”고 전했다.
○ 국가 정세 불안정이 최대 과제
관광산업 대국을 목표로 육성에 나섰지만 기대 못지않게 우려도 크다. 최근 사우디 국영석유회사 아람코의 석유 생산시설이 공격을 받은 것처럼 주변국과의 갈등이 발생하면 갑작스럽게 국가 정세가 불안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강한 보수 이슬람교 이미지도 탈피해야 할 단점이다. 지금도 사우디는 외국인 여성들도 아바야(목 아래 몸 전체를 가리는 검은 천)를 착용하게 한다.
아랍에미리트(UAE), 카타르, 오만처럼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사회 분위기를 보이는 인근 나라들과의 경쟁이 쉽지 않을 것이란 지적도 있다. 이 나라들은 사우디가 금기시하는 음주도 허용한다. 특히 UAE와 카타르는 각각 ‘엑스포 2020’과 ‘2022년 월드컵’을 유치해 관광지로서의 명성을 높이고 있다.
일각에선 관광비자를 받은 외국인들이 사우디 현지에서 물의를 일으킬 경우 갑작스럽게 정책이 바뀔 수도 있다고 전망한다. 이미 관광산업이 궤도에 오른 나라들과 달리 외국인과 접촉이 적었던 만큼 관광객의 약간의 일탈로도 사회 분위기가 급격히 냉각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장지향 아산정책연구원 중동센터장은 “전체적인 관광산업이 성공하려면 시간이 꽤 걸릴 것”이라며 “사우디 정부가 얼마나 인내심을 갖고 안정적으로 정책을 운용하느냐가 향후 이 나라의 관광산업 성패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지다·알울라·리야드에서 이세형 카이로 특파원 turt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