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든 그라운드와 작별을 알린 백지훈은 축구인생의 제2막을 앞뒀다. 지도자와 행정가 등 다양한 진로를 고민하는 가운데 그는 80점짜리 현역 여정을 100점까지 채운다는 의지다.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승리의 파랑새’ 백지훈(34)이 정든 그라운드와 작별을 고했다.
백지훈은 다음 달 6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릴 수원 삼성과 FC서울의 ‘하나원큐 K리그1 2019’ 33라운드 슈퍼매치에서 공식 은퇴한다. 2003년 전남 드래곤즈에서 프로에 데뷔한 그는 서울(2005~2006)을 거쳐 수원에서 10년 간 활약했다. 서울에서 수원으로 이적한 첫 사례인 백지훈은 푸른 유니폼을 입고 170경기에서 22골·11도움을 올렸다. K리그에서의 마지막 팀은 K리그2 서울 이랜드FC(2017)다. 이후 리만FC(홍콩)로 향했고, 2018~2019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결정했다. 26일 서울의 한 카페에서 마주한 백지훈은 “당당히 박수를 받으며 떠나고 싶었다. 어설픈 마무리는 원치 않았다. 지금이 (은퇴의) 적기라고 봤다. 아쉬움도 있지만 최선을 다했으니 80점은 주고 싶다”며 미소를 보였다.
-이별의 순간이다.
-솔직한 심정은.
“은퇴식이 다가오니 착잡하다. 훈련을 하고, 경기 준비하고, 동료들과 함께 버스에 몸을 싣고 경기장으로 향한 뒤 실전에 나서고 라커룸에서 환희를 느끼고. 모든 것들을 더 이상 경험할 수 없다는 점이 조금 서운하다.”
-가장 행복한 기억은.
“독일월드컵을 경험한 2006년이다. 인생의 황금기였다. 경기는 뛰지 못했지만 이름을 각인시킨 시기다. ‘파랑새’ 별명도 생겼다. 골을 넣으면 모두 결승포가 됐다. 자신감도 대단했다. 서울을 떠나 수원으로 이적해 욕도 많이 먹는 등 가장 화려한 시기였다.”
백지훈. 사진제공|한국프로축구연맹
-시련도 있었는데.
“2010년 9월이다. 샤샤(성남)와 부딪혀 무릎을 크게 다쳤다. 첫 진단이 잘못돼 공백기가 길어졌다. 뒤늦은 수술과 재활로 2011년을 통째로 날렸다. 2012년 상무로 향했지만 조급한 마음에 빨리 복귀했다. 6월 복귀를 목표했는데 개막전에 무리하게 나섰고, 다시 꼬였다.”
“국가대표와 월드컵, 어린 나이에 많은 걸 한꺼번에 이뤘다. 고3 때 지켜본 2002한일월드컵 직후 대회에 나섰으니. 돌이켜보면 너무 안주했다. 좋은 팀과 우승, 풍족한 조건 등 부족함이 없었다. 거기에 만족했다. 더 큰 꿈을 품었어야 했다. 더 채찍질하고 축구에 빠져들었다면 어땠을까. 그래도 80점은 주고 싶다. 선수로 흔치 않은 경험도 했다. 올림픽과 월드컵 등 대부분을 이뤘다. 열심히 했다.”
-또래들은 많이 은퇴했다. 다음 계획은.
“결정한 건 없다. 준비한 은퇴도 아니었다. 지도자도 조심스레 생각하고 있다. 라이선스 과정도 이수할 계획이다. 평생 축구만 하다보니 안 해본 게 많다. 최대한 많은 걸 경험하고 싶다. 지금은 신생아와 다름없다. 다른 이들의 일상이 내게는 도전이다. 후회는 남기고 싶지 않다. 많이 도전하고 계속 부딪히며 삶을 개척하겠다.”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