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최초 민선시장… 2번 더 당선, 총리와 대통령도 2번씩 역임 부시의 이라크 침공 격렬히 반대, 유로화 도입… 사회 통합에 총력 르몽드 “드골 이후 최고의 정치인”
26일 자크 시라크 프랑스 제22대 대통령이 파리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별세했다. 1995년부터 2007년까지 12년 동안 재임한 시라크 전 대통령은 샤를 드골 이후 가장 뛰어난 정치인으로 ‘프랑스 우파의 거두’, ‘유럽의 수호자’ 등으로 평가받는다. 파리=AP 뉴시스
‘프랑스 우파의 거두’ 자크 시라크 전 프랑스 대통령이 26일(현지 시간) 별세했다고 AFP통신이 보도했다. 향년 87세. 시라크 전 대통령은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파리에서 평화롭게 눈을 감았다고 그의 사위가 전했다.
1932년 파리에서 은행원의 아들로 태어난 시라크 전 대통령은 명문 파리정치학교, 그랑제콜 중 하나인 국립행정학교를 거쳐 1962년 조르주 퐁피두 대통령의 참모로 정계에 입문했다. 그는 1967년 35세의 나이로 프랑스 중부 코레즈 지방에서 하원의원으로 당선된 이후 농림부 장관, 내무부 장관을 거쳐 1974년 총리로 발탁됐다.
시라크 전 대통령은 첫 번째 총리직을 맡은 이후인 1976년 드골주의를 계승한 ‘공화국을 위한 연합(RPR)’을 창당했다. RPR는 현재 프랑스 제1야당인 중도우파 공화당의 원류다. 1977년에는 최초의 파리 민선 시장으로 당선돼 1995년까지 18년 동안 세 차례 파리 시장을 지냈다. 프랑수아 미테랑 전 대통령 시절인 1986년 한 번 더 총리직을 수행했다.
프랑스 일간 르몽드는 시라크 전 대통령의 재임 동안 세 가지 큰 성과가 있었다고 평가했다. 시라크 전 대통령은 재임 동안 ‘도로 폭력과의 전쟁’을 기치로 내걸어 교통사고 사망자 수를 43% 줄였다. 암과의 전쟁을 통해 50∼74세 여성에 대해 무료 유방암 검진을 도입하고 공공장소 내 금연구역을 만들었다. 르몽드는 시라크 전 대통령이 사회통합 정책으로 장애인의 평등한 권리와 시민권을 확보했다고 덧붙였다.
시라크 전 대통령은 재임 당시 유로화를 도입하는 등 ‘하나의 유럽’에 기여하기도 했다. 그는 2003년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이라크전쟁에 격렬하게 반대하면서 ‘유럽의 목소리’를 대변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 반대의 선봉에 섰던 다자주의를 옹호한 대통령”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시라크 전 대통령은 퇴임 후에는 질병에 시달렸으며 재임 시 부패 사건으로 불명예를 떠안았다. 파리 시장 시절 공금 횡령 사건으로 2011년 2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뇌중풍(뇌졸중)으로 2014년 병원에 입원한 이후 공식석상에 나선 적이 없다고 프랑스24는 전했다.
르몽드는 이러한 불명예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현대 정치사에 40년 이상 족적을 남긴 인물로 샤를 드골 이후 가장 뛰어난 정치인으로 남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시라크 정부에서 외교부 장관과 내무부 장관을 지낸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은 이날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그에 대한 기억은 모든 프랑스 국민의 마음에 남을 것이다. 내 인생의 한 부분이 사라진 것만 같다”고 애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