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범국가, 독재국가, 공산국가… 결국에는 무너졌던 ‘역사의 교훈’ 한국의 지난 100년 누가 만들었나… 촛불 이후의 미래는 국민들 몫이다
김형석 객원논설위원·연세대 명예교수
냉전 상태가 세계를 엄습하고 있을 때였다. 한 기자가 미국 역사학자 아서 슐레진저 2세 교수에게 물었다. “당신은 현재와 같은 위기에서도 인류에 희망이 있다고 믿는가?” 그는 “역사를 긴 과거로부터 먼 앞날까지 바라보는 사람이 많아지면 된다”고 대답했다. 우리는 역사를 파괴한 사람을 역사의 건설자로 착각하는 경향이 심하다. 내가 대학생 때 태평양전쟁의 주범인 도조 히데키(東條英機) 총리를 위대한 일본의 건설자로 믿고 따르는 사람이 많았다. 도조는 독일의 히틀러, 이탈리아의 무솔리니와 더불어 군국주의 연대를 구축하면서 영미를 포함한 민주국가들을 제압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종말은 비참했다. 일본을 파국으로 이끌었고 본인은 전범자로 사형이 선고됐다. 어떤 기록에서 읽은 적이 있다. 감옥에 있으면서 계속 ‘나무아미타불’을 반복하면서 구원을 빌었고, 사형장에서 의식을 잃을 때까지 속죄를 비는 합장을 계속했다는 얘기였다. 히틀러는 지하 벙커에서 작전을 지휘하다가 러시아 군대가 진입한다는 보고를 받았다. 그는 “내 시신을 완전히 불태워버리고 불탄 재까지 없이 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1972년 여름 이탈리아를 여행하다가 밀라노 기차역에서 한 이탈리아 교수를 만났다. 그는 나에게 두 가지 얘기를 했다. 무솔리니가 로마를 탈출해 밀라노까지 은신했는데 시민들에게 붙잡혀 처형당하고 시신은 철조망 밑으로 버려졌다는 얘기였다. 그 교수는 18년 동안 공산당원으로 활동하다가 탈당했다. 소련의 종말도 그와 비슷해질 것 같았다는 것이다.
일본의 지성인들이 아베 정권의 앞날을 걱정하는 것은 또 하나의 도조의 악령이 나타나지 않을까를 우려하기 때문이다. 내 사견으로는 일본 왕실은 아시아와 세계의 평화가 더 중한 역사의 목표임을 원하는 것 같다. 물론 현재의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군사강국이 필수적이라고 말할 수는 있다. 그러나 역사를 긴 안목으로 본다면 무력이 평화의 수단이 되지는 않는다.
대한민국에도 많은 기복이 있었다. 먼 후일에 건설적 업적으로 남는 것도 있겠으나 파괴적 요소가 적지 않았다. 후진 국가에서는 그 파괴의 주범이 주로 권력 만능을 믿는 정치인들을 통해 감행되었다. 북의 ‘김일성 왕가’의 탄생과 다가올 종말도 긴 역사에서 보면 불가피한 과정이 될 것이다.
지금은 우리가 역사를 건설한다고 정치권력을 앞세우지만 그들이 역사를 파괴하는 것이 보통이다. 100년 후에도 남을 것을 위해서 해야 한다. 그렇게 보았을 때 가장 중요한 역사적 가치판단은 확실하다. 정치 그 자체, 정치를 위한 정치는 결코 역사의 목적이 못 된다는 사실이다. 필요한 역사적 과정이며 수단이기는 하나 정권을 위한 정치는 존재할 수가 없다. 정치의 기본 목표는 국민과 인류의 인간다운 삶과 행복이다. 그 점에 있어서는 영국 철학자들이 제창한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이 가장 큰 행복을 누릴 수 있는가’야말로 정치는 물론이고, 경제의 목적이어야 한다. 민주정치의 출발과 목적이 바로 거기에 있다. 그 원칙을 해치는 것이 사회악이 되며 그 의무를 책임지는 것이 민주정치인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지난 100년 역사를 통해 우리 역사는 누가 건설했는가. 민족적 자각과 자주성을 되찾아 준 독립운동가들이었다. 6·25전쟁을 치르면서도 자유민주주의를 지켜 준 국민들이다. 전쟁 이후에는 많은 과오를 거듭하면서도 대한민국을 자유민주국가의 방향으로 이끌어 준 이승만 대통령을 잊을 수 없다. 정치적 실책을 겪으면서도 국민을 절대빈곤에서 해방시켜 준 노력은 박정희 정권 초창기의 업적이다. 유신헌법부터 전두환 정권까지는 민주정치의 암흑기였다. 그 와중에도 건설의 노력을 멈추지 않고 민주화를 쟁취한 국민들이 역사를 건설해 주었다. 그 결과로 권력정권에서 법치국가로 탈바꿈시켜 준 애국적 시민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오늘의 대한민국을 누가 건설해 주었겠는가.
지금 우리는 박근혜 정부 말에 일어난 촛불운동의 뒤를 계승해가고 있다. 앞으로 누가 역사를 건설할 것인가. 자유민주주의를 위하고 자유와 인간애를 염원하는 국민들의 책임이 아닐 수 없다. 모든 정치 이데올로기는 휴머니즘의 바다에 흡수되는 것이 역사의 길이기 때문이다.
김형석 객원논설위원·연세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