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진 교수 그림
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우주는 우리가 볼 수 없는 정체불명의 물질로 구성돼 있다!” 1933년 이렇게 황당한 주장을 한 물리학자가 있었다. 바로 미국에서 활동한 스위스 천문학자 프리츠 츠비키다. 그의 주장은 우주엔 우리가 눈으로 관측할 수 있는 물질은 4%뿐이고, 나머지는 암흑물질 22%, 암흑에너지 74%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이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다. 당시에 암흑물질에 관한 그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당연히 관심을 모을 수 없었고, 그는 괴팍하고 고집 센 과학자 취급을 받았다. 시간이 흘러 1962년, 베라 루빈이라는 여성 천문학자가 은하에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무거운 암흑물질이 숨겨져 있다고 주장했다. 그렇게 츠비키 교수의 주장은 되살아났다.
인간은 오감 중 90%를 시각에 의지해 살아간다. 우리가 세상과 우주를 바라보는 방법은 전적으로 우리 눈으로 확인 가능한 빛에 의존한다. 눈에 보이는 세상보다 보이지 않는 세상이 더 넓고 광대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으면 없는 것으로 생각한다. 엄연히 존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주의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 입장에서 인간을 바라본다면 인간은 극히 일부분만을 볼 수 있는 맹인에 가까운 존재다.
과학은 진실을 추구하는 학문이다. 겉으로 보이는 지극히 일부분을 보고 진실을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 1978년 루빈과 그의 동료들은 11개의 은하를 관측한 결과를 통해, 루빈 자신이 예측한 암흑물질의 존재를 확인한다. 츠비키 교수가 예언한 지 45년 만에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우주의 나이 138억 년을 생각한다면 45년이라는 시간은 지극히 짧은 시간이지만, 고통받는 당사자에겐 우주의 나이처럼 긴 시간 아니었을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눈앞에 있는 사실만 보고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처럼 보이지 않는 96%의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