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질환 응급입원 ‘좁디 좁은 문’ 폭력성 나타날 상황서 119 불러도 구급대원은 입원 동의 권한 없고 출동 경찰, 책임 두려워 소극 대응… 사설 구급차 이송땐 병원서 거부 한밤에 가족관계부 제출 요구도… 전문가 “현장에 맞게 법개정 필요”
하지만 이튿날 오전 1시경 겨우 응급실에 도착한 이들에게 돌아온 것은 ‘문전박대’였다. 당직의사는 119구급차가 아닌 사설 구급차로 왔기에 “법적으로 입원시킬 수 없다”고 말했다. A 씨와 자녀는 병원 근처 여관에서 쪽잠을 잔 뒤 첫 기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올 4월 경남 진주에서 일어난 ‘안인득 방화·살인사건’ 이후 중증 정신질환자에 대한 강제입원 절차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응급입원을 요하는 정신질환자들을 응급실에서 거부하는 일은 여전히 잦다. 의료현장에서는 정신질환자의 인권 향상을 위해 2017년 개정된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정신건강복지법)’이 환자와 그의 가족을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그러나 119구급대원이 아닌 사설 구급대원이 응급실로 호송하면 병원은 응급입원을 거부하기 일쑤다. 사설 구급대원이 데려온 환자를 입원시켰다가 ‘불법 감금’으로 처벌받은 판례가 있기 때문이다.
타인의 안전을 해칠 위험이 높은 행위를 하는 정신질환자를 응급 입원시키려고 119구급대원을 불러도 허사인 경우가 많다. 현행법상 119구급대원은 응급입원을 동의해줄 권한도, 강제로 환자의 행동을 제지할 권한도 없다. 이런 경우 119구급대원은 경찰에 출동을 요청한다.
하지만 경찰도 환자를 제지하고 응급입원에 동의하는 데 소극적인 경우가 많다. 경찰 스스로 응급입원 요건이 충족됐는지 판단하기 쉽지 않고, 나중에 의사가 “입원할 필요가 없다”고 진단했을 경우 인권침해의 책임을 져야 할 우려가 있어서다. 정신질환자 가족은 상대적으로 법의 구애를 덜 받는 사설 구급대에 응급실까지의 호송을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 당직의가 환자를 데리고 늦은 밤 응급실을 찾은 가족이 정말 보호자가 맞는지 가족관계증명서를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에 “의료 현실에 맞도록 정신건강복지법을 재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최준호 대한신경정신의학회 법제이사는 “자신이나 타인에게 위험이 명확한 환자는 119구급대가 호송하되 응급입원 과정에 있는 의사와 경찰이 소극적이지 않도록 요건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국가 차원에서 권역별 정신응급의료센터를 둬서 응급입원이 필요한 정신질환자를 별도 관리해야 한다는 제안도 있다.
전주영 기자 aimhig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