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정상 ‘전환 공감’했다는데… 비건, 올초부터 20차례 가까이 언급 ‘싱가포르 선언’ 설명 과정서 사용… 美 새로운 입장으로 보기 어려워 실무협상 앞두고 北압박 의도인듯… 볼턴 경질후 ‘전환’의미 바뀔지 주목
한미 정상이 23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회담에서 북-미 관계의 ‘전환(transformation)’에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미국이 제기한 ‘새로운 방식’이 구체화되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그러나 ‘전환’이란 표현은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 등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내 ‘대북 대화파’들이 즐겨 썼던 표현이기도 해 지나친 확대해석은 피해야 한다는 신중론도 만만치 않다.
○ 美 ‘관계 전환’ 언급하며 ‘로드맵’ 요구 가능성
비건 대표는 올해 공개 석상에서 북-미 협상의 목표가 관계의 ‘전환’이라는 표현을 무려 스무 차례 가까이 사용했다. 미국의 협상 입장을 사실상 총망라한 것으로 평가되는 1월 말 스탠퍼드대 연설에서는 7회 사용했고, ‘하노이 결렬’ 후 비건 대표의 첫 공식 무대였던 카네기재단 강연에서도 7회 썼다. 가장 최근인 미시간대 연설에서는 5회 언급했다.
그러나 ‘전환’이란 표현이 사용됐던 과거 맥락을 따져보면 언급 자체에 힌트가 있다는 분석도 있다. 즉, 북한이 비핵화 ‘로드맵’을 들고 협상 테이블에 나서야 한다는 일종의 압박 메시지라는 것. 구체적으로 비건 대표는 스탠퍼드대 연설에서 북한의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검증’부터 현재 보유하고 있는 핵무기 등에 대한 ‘포괄적 신고’까지 비핵화의 전 과정을 언급하며 “이 모든 것이 북-미 관계를 ‘근본적으로 전환(fundamentally transform)’하기 위해 필요한 실무협상 로드맵에서 다뤄져야 한다”고 못 박기도 했다. 북-미 ‘관계 전환’과 비핵화 ‘로드맵’을 테이블에 함께 올려놓고 얘기해 보자는 것이다.
○ ‘볼턴 OUT’ 상황서 ‘전환’ 의미 바뀔지 주목
외교가에서는 비건 대표의 스탠퍼드대 연설 등 공개 강연에서 나왔던 미국 측의 입장이 앞으로 다가올 실무협상 과정에서도 여전히 상당 부분 유효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하노이 결렬’ 이후 미국의 대북 전략 기조에 근본적인 변화를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사정에 정통한 외교소식통은 “비건 대표가 올해 진행했던 공개 강연 내용들은 여전히 (미국의 협상 입장으로) 유효하다. 올해 초 진행됐던 것들도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북-미 실무협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전환’이란 포괄적이고 추상적인 단어가 보다 구체화될 가능성이 있다. ‘전환 2.0’이 등장할 수 있다는 것. 무엇보다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해임 등 대북 ‘매파’의 입지가 약화된 상황에서 ‘대화파’가 즐겨 쓰는 용어가 한미 정상회담에서 미국의 공식 입장으로 언급됐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크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한 외교소식통은 “9월 하순경으로 당초 예고됐던 북-미 실무협상이 아직 구체적 일정을 잡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워싱턴이 보다 유연한 대북 접근 가능성을 내비치는 것 같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