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선인터넷에 웹캠, 마이크까지 있어야 하고, 모니터 보면서 60분 면접이라니… 학교 안에 이런 컴퓨터가 있나요?”
16일 서울대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국민은행 AI 면접 뭔가요’라는 제목의 글에 취업준비생들의 문의가 줄줄이 이어졌다. “이런 면접인 줄 몰랐다”며 당혹스럽다는 반응과 “캠코(한국자산관리공사) 지원했을 때 구린 컴퓨터로 했더니 렉(에러 혹은 지연) 먹었다”는 경험담이 나오기도 했다.
인공지능(AI) 앞에서 채용 면접을 보는 일이 더 이상 먼 얘기가 아니게 됐다. 올해 하반기(7~12월) 채용에서 AI 면접을 도입한 국내 기업은 140곳이다. 국민은행과 신한생명 등 금융업계, 현대엔지니어링 같은 제조업계, 제약업계, 정보기술(IT) 업계, 공공기관 등 사실상 업종을 망라하고 AI 면접은 새로운 채용 전형으로 떠올랐다.
25일 국내 기업들에 AI 면접 프로그램 ‘인에어(inAIR)’를 제공하는 소프트웨어 기업 마이다스아이티를 통해 온라인 AI 면접 체험판 서비스를 이용해봤다. 전반적인 과정은 토플이나 오픽(OPIc) 등 어학 시험에서 요구되는 스피킹 테스트와 비슷했다.
AI 면접은 웹캠이나 노트북 내장 카메라, 헤드셋 혹은 내장 마이크 등의 상태를 체크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지원자의 얼굴이 화면 전체에 들어와야 하며 주변이 소란스러우면 안 된다고 사전에 공지된다. 각 질문마다 생각할 시간과 답변 시간이 각각 주어지며 답변을 마치면 지원자가 직접 ‘제출하기’를 누르고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체험판에서 주어진 질문은 “길이 막혀 약속에 늦게 된 경우 상대방에게 양해를 구해보세요”였다. 이 같은 상황 대처 질문이 이어진 다음 직군별로 특화된 게임을 하게 된다. 영업직군에 요구되는 순발력 테스트를 위해 마우스 클릭으로 움직이는 퍼즐을 맞추는 게임이 제시됐다. 기존 대기업 인·적성검사와 달리 단순 지식 기반 시험이 아니고 독립된 공간에서 혼자 할 수 있다보니 심적 부담은 훨씬 덜했다.
모든 과정이 종료됨과 동시에 AI가 분석한 적합 직군과 응시자 성향, 지원 회사의 어떤 구성원과 유사한지 등의 결과가 도출된다. 얼굴 인식 및 음성 분석을 통해 적절한 표정과 말투를 갖추고 있는지, 의사 전달력은 좋은지, 게임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했는지 등이 판단 근거가 된다. 평가는 기존 기업 재직자 1500명을 대상으로 AI 면접을 진행하고 이들의 실제 성과데이터를 AI에 학습시킨 결과를 바탕으로 이뤄진다. 지난해 3월 AI 면접 프로그램을 출시한 이후 지금도 꾸준히 늘고 있는 실제 지원자들의 데이터(개인정보 제공에 동의한 경우에 한함)도 머신러닝의 재료가 되고 있다.
지난해 AI 면접을 통해 마이다스아이티에 입사한 박의로운 씨(27)는 “취업준비 기간 동안 기업별 인·적성 시험을 준비하면서 ‘이런 게 일 잘 하는 거랑 무슨 상관일까?’하는 회의가 들었다”고 했다. 반면 “AI 면접을 처음 접했을 땐 ‘신기하다’는 인상과 함께 ‘단순 인·적성 보다 진짜 나를 알아봐주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 “연내 300개 이상 기업이 AI 면접 볼 것”
취업 시장에는 AI 면접 후기와 팁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일부 특성화고나 대학들에서 ‘AI 면접 준비 전략 특강’이 열리기도 한다. 하지만 대면 면접과 마찬가지로 ‘정답’은 없다는 게 면접 프로그램 제공 업체의 설명이다.
면접에 포함된 게임의 경우에도 단순히 결과 점수로만 판단하는 게 아니라 ‘어떤 성향을 가진 사람인지’ ‘실패한 경우 다음 턴에서 어떻게 반응하는지’ 등을 분석하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 “가장 자신답고 자연스러운 태도로 임하라”는 게 관계자들의 조언이다. 다만 카메라는 하단보다는 상단에 위치한 것이 좋으며 무선인터넷보다는 유선인터넷, 헤드셋과 이어폰, 에어팟 중에선 헤드셋이 보다 유리하다는 조건은 유효하다.
올해 음원업계 처음으로 AI 면접으로 인적성 검사를 대체하기로 한 KT 지니뮤직 경영기획실 박정수 상무는 “면접관의 성향이나 선입관으로 인한 오류를 줄이는 한편 음원 기업에 필요한 인성, 공감능력 등을 빅데이터 기반으로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위해 AI 면접을 도입했다”고 밝혔다. 한국자산관리공사 관계자는 “각종 채용 진행 비용, 면접비, 면접관 평가비용 등 고정비용 지출을 줄이고 채용 기간도 훨씬 단축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마이다스아이티 측은 연내 300개 이상의 기업이 AI 면접을 채용 단계에서 활용할 것으로 전망한다. 해외에서도 미국 IBM이나 영국 유니레버, 일본 소프트뱅크 등이 AI를 채용 과정에 적용하고 있다. 원지현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해외 기업들의 경우 AI가 지원자의 심장 박동과 자주 쓰는 어휘 등을 분석해 당락을 결정하며, 뇌파까지 분석하는 사례도 있다”며 “많은 기업들이 디지털 변혁을 추진 중인 가운데 기업 경쟁의 핵심인 인재 확보와 각종 의사결정을 위해 AI를 적용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말했다.
곽도영기자 no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