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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는 ‘최고로 참아내는 경영자’다[동아 시론/조우성]

입력 | 2019-09-28 03:00:00

왕의 아들이란 이유만으로 군주 된 이들에
본인의 능력 과시 경계하라 고언한 한비자
뛰어난 신하들의 지혜를 활용하라 조언
세간은 삼성 LG의 ‘젊은 리더십’에 관심
천재 경영인도 혼자선 회사 운영 못해
인재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지휘자 돼야




조우성 법무법인 머스트노우 대표변호사

평소 인화(人和) 경영을 강조하던 LG의 최근 달라진 모습이 재계의 이슈가 되고 있다. LG가(家) 3세 구광모 회장 취임 후 경쟁사와의 소송전도 불사하고 있다. 삼성은 이재용 부회장 체제에서 하만을 9조3000억 원에 인수하는 승부수를 날린 것을 시작으로, 지금은 일본 수출 규제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 한창이다. 이런 변화는 모두 ‘젊은 리더십’ 덕분이라는 말도 나온다. 하지만 이들 앞에는 국내 경제 침체, 세계 무역 갈등, 기술 급변 등 극복해야 할 과제들도 놓여 있다. 위기의 시대, 젊은 리더십의 진가를 증명해야 할 처지다. 젊고 유능한 리더는 조직에 활력과 긴장을 동시에 준다. 조직원들은 과연 젊은 리더가 어떤 리더십을 보여줄지 관심을 갖는다.

제왕학의 대가 한비자는 저서 ‘한비자’ 중 ‘양권’ 편에서 “위에 있는 군주가 장기를 부리기 시작하면 모든 일이 균형을 잃고 법도에 맞지 않게 된다”고 경고하며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군주가 자기 자랑이 심하고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길 좋아하면 아랫사람에게 속임을 당하기 쉽다. 말재주가 좋고 영리하며 재능을 드러내기 좋아하면 아랫사람이 빌붙어 일을 꾸미려고 한다.

예전 의뢰인인 K 대표 사례가 떠오른다. 미국 아이비리그 출신의 수재로 회사의 주력인 신재생에너지 분야 박사 학위도 보유했다. 그는 회사의 여러 문제에 대해 누구보다 정확한 진단과 적합한 대응책을 제시했다. 다만 자신의 의견에 누군가 이의를 제기하면 “과연 누가 맞는지 볼래요?”라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두고두고 기억했다가 복기(復碁)한다. “이사님, 그때 제 의견에 반대하셨죠? 지금 와서 보니 어떠세요? 제가 예측한 대로 됐죠?” K 대표의 이런 행동은 임직원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의견을 제시하지 않게 만들었다. 도리어 괜히 말했다가 최고경영자(CEO)에게 ‘찍히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과 ‘대표님이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되지’라는 패배의식을 조장했다.

한비자가 살았던 전국시대 말엽은 단지 왕의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군주의 자리에 올라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한비자는 명분론이 아닌 현실론을 중요시했다. 아무리 능력이 떨어져도 일단 군주가 되면 자신에게 주어진 권한을 잘 행사하면서 선정(善政)을 베풀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 자신보다 뛰어난 사람들의 능력을 최대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한비자는 ‘팔경’ 편에서 진짜 고수는 다른 사람의 지혜를 활용해야 한다면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하급의 군주는 자기의 능력을 모두 사용하고, 중급의 군주는 다른 사람의 힘을 모두 사용하며, 상급의 군주는 다른 사람의 지혜를 모두 사용한다. 자신이 나서지 않고 신하를 잘 통솔함으로써 일이 되게 하는 리더십의 대표 주자로 한나라를 세운 유방이 있다. 다음은 ‘사기’에서 유방이 자신의 승리 이유를 밝히는 유명한 대목이다.

“본시 중앙에서 정략을 꾸미고 천 리 바깥에서 승리를 이끄는 전략을 짜는 데 있어서 나는 장량(장자방)보다 못하다. 국가를 다스리고 국민을 살펴 전선에 양식을 공급하는 등 군수 조달에 있어 나는 소하에게 미치지 못한다. 백만의 대군을 배치하여 싸우면 반드시 이기고, 공격하면 반드시 점령하는 군사 지휘 능력에 있어 나는 한신에게 미치지 못한다. 이 세 사람은 모두 뛰어난 인재들인데, 나는 그들을 잘 쓸 수 있었다. 내가 천하를 장악한 이유이다.”

역사적으로 현명하지 못한 군주는 현신(賢臣)을 시기하는 일이 잦았으며, 남은 충신들마저 끝내 희생시켰다. 이러한 암흑시대에는 유능한 인재들이 탈주하거나 온몸으로 저항하는 것밖에는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결국 큰 인물이 아니면 큰 인물을 등용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아무리 천재적인 역량을 지닌 CEO도 회사를 혼자 운영할 수는 없다. 워낙 다양한 분야에서 승부를 걸어야 하는 확대된 전선(戰線) 속에서 CEO는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전체적인 조율을 해 나가야 한다.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각자가 제 역할을 다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한다. 누군가 CEO는 ‘최고로 참아내는 경영자(Chief Endurant Officer)’라고 했는데 능력 있고 재기 발랄한 CEO일수록 참모들의 역량을 최대치로 끌어올릴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그런 사람이 진정한 고수다.
 
조우성 법무법인 머스트노우 대표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