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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으론 “인류공동체” 안으론 “중화민족 부흥”… 14억명 단결에 방점

입력 | 2019-09-28 03:00:00

[위클리 리포트]내달 1일 정부수립 70주년 맞는 ‘중국의 고민’




24일 베이징(北京)전람관은 중국 정부 수립 70주년(10월 1일) 기념 특별전을 보려는 단체 관람객들로 북적였다. 대부분 중국 국기인 붉은색 오성홍기를 손에 쥐고 있었다. 공산당원 배지를 가슴에 단 이들이 많았다. ‘위대한 여정, 눈부신 성과―중국 수립 70주년 대형 성과전(展)’이라는 이름의 전시회. 1949년부터 올해까지 중국 공산당의 70년 역사를 소개했다. 혁명을 상징하는 붉은색으로 치장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집권 시기 전시 공간은 이전 지도자들의 집권 시기에 비해 비중이 훨씬 크고 화려했다. 입구엔 ‘부흥(復興)으로 가다’라는 큰 글씨가 있었다.


○ 국내: “중화민족 한 가족, 함께 중국몽 건설”


1989년 톈안먼(天安門) 사태는 ‘정치적 풍파를 진압했다’는 제목의 사진 한 장으로 간단히 소개됐다. “당과 정부가 인민에 기대어 반(反)혁명폭란을 진압했다”는 설명 위에 톈안먼 광장 유혈진압(6월 4일) 5일 뒤인 그해 6월 9일 덩샤오핑(鄧小平)이 웃는 표정으로 수도계엄부대 간부들을 만나는 사진이 걸려 있었다. 1960, 70년대 마오쩌둥(毛澤東)의 문화대혁명과 관련한 분명한 설명이나 소개가 없었다. 1968년부터 이어진 젊은이들의 농촌 하방 생활을 재현한 모형만 눈에 띄었다. 하방은 마오쩌둥이 “농촌에서 배워라”면서 지식인을 농촌으로 보낼 때 썼던 말이다.

특별전은 과(過)보다 공(功)을 내세웠다. 세계를 주도하는 강한 중국이 되려는 ‘중국몽(夢)’을 위해 애국이 필요하고 민족이 단결해야 한다는 민족주의 메시지를 강하게 발신했다. 시 주석은 24일 중앙정치국 회의에서 “애국주의는 중화민족 정신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전시관에서 만난 왕민(王敏·47) 씨는 “문화대혁명 때 우여곡절이 많았다”면서도 “시 주석 집권 이후 중국의 경제, 정치, 국제적 지위가 많이 높아지고 강해져 영광스럽고 민족적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량단(梁丹·24·여) 씨는 “최근 2년간 미중 무역전쟁 등 중국 주변 정세가 그리 좋지 않다. 홍콩 문제도 아직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다”며 “우리가 하나의 집체로서 공통의 역량을 일으켜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 정부가 강조하는 애국주의 민족주의에 대해 적극적이었다. 그는 “고속 발전 시기에 태어난 나 같은 20대는 소셜미디어에서 샤오펀훙(小粉紅·애국주의 색채의 누리꾼)이라고 불린다”고 말했다.

관영 중국중앙(CC)TV는 중추절(추석) 때 베이징 톈안먼 광장 국기게양식을 보기 위해 전국에서 몰려든 사람들의 영상을 매일 내보내고 있다. 이들은 ‘나는 너를 사랑해 중국’이라는 노래를 합창하며 눈물을 흘린다. 베이징 곳곳에는 “중화민족은 한 가족이다. 함께 중국몽을 건설하자”라며 애국주의와 민족주의를 강조하는 붉은 바탕의 선전 표어들이 붙었다.

24일 전시장에서 만난 20∼60대 중국인들은 가난에서 벗어나 부유해지고 강해졌다는 자부심이 강했다. 공산당이 인민에게 요구하는 애국주의와 민족주의를 사명으로 받아들였다.

중국 정부 수립 초기인 1952년 국내총생산(GDP)은 679억 위안(약 11조4000억 원)에 불과했다. 지난해 90조309억 위안(약 1경5154조 원)으로 성장했다. 경제 규모가 무려 1325배 커졌고 미국에 이은 세계 2위 경제대국이 됐다.

중국은 책임 있는 강대국이 되겠다며 ‘인류운명공동체’를 제시하면서도 자국의 이익을 앞세우는 ‘중화민족의 부흥’을 강조하고 있다. 이유가 뭘까.

중국 국제정치학계 석학인 왕지쓰(王緝思) 베이징대 국제전략연구원장은 한 강연에서 “인구 10억여 명의 큰 국가가 응집하게 만들려면, 진실을 말하자면, 마르크스주의 공산주의보다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민족주의가 더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이래야 중국을 다른 나라와 분리시켜 중국인이 중국을 열렬히 사랑할 수 있게 만든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민족이나 국가 모두 만들어지는(構建) 것이다. 이를 적게 얘기하고 싸우지 않고 평화적 발전을 유지할 수 있는 것들을 많이 얘기하는 게 좋다”고 지적했다.


○ 외교: 유엔 영향력 높이며 일대일로 확대


중국은 1971년에야 유엔에 가입했다. 48년이 지난 지금 부쩍 커진 경제 규모를 바탕으로 유엔 등 국제사회에서 영향력을 급속도로 확대하고 있다.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어스는 16일 “중국의 리더십과 권위주의적 가치가 곧 유엔에 온다”는 기사에서 유엔에서 몸집을 불려가는 중국의 움직임을 주목했다. 포린어페어스는 “수십 년 전만 해도 유엔에서 중국의 역할은 방해자(spoiler)였지만 이제 유엔에 대한 재정 기여도를 높이면서 미국의 유엔 리더십을 대체하려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유엔 산하 15개 특별기구 가운데 유엔식량농업기구(FAO) 국제전기통신연합(ITU)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공업개발기구(UNIDO) 등 4개 기구의 수장이 중국 관료다. 미국 관료가 수장인 유엔 특별기구는 1곳에 불과하다. 이번 유엔 총회에서도 중국은 기후변화 문제에서 글로벌 리더십을 포기한 미국의 틈새를 파고들었다.

중국이 유엔 영향력 확대를 통해 국제사회로부터 일대일로(一帶一路)의 정당성을 확보하려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대일로는 대규모 기초 인프라 건설 투자로 중국과 주변 국가를 연결하려는 시 주석의 대표적 전략이다. 중국이 채무 함정, 환경 파괴 문제 등으로 국제사회 일각의 비판을 받고 있는 일대일로를 유엔의 빈곤 완화 및 환경 보호 정책인 ‘2030년 지속가능 발전 목표’처럼 인식시켜 유엔의 지지를 얻으려 한다는 것이다. 본보와 만난 중국 정부 관계자들도 일대일로에 대해 “중국은 기초 인프라가 부족한 저개발 국가를 도울 책임과 의무가 있다”고 말해 이미지 전환을 시사했다.


○ 경제: 6% 이하 성장률 대비하는 중국

중국은 40년간 고속성장을 지속해 왔다. 하지만 국가 주도의 성장 위주 정책은 공급 과잉, 빈부 격차, 환경 파괴 등 구조적 문제를 낳고 있다. 미중 무역전쟁으로 경기 둔화가 뚜렷해지면서 이런 문제가 더욱 두드러졌다.

이에 중국 정부가 경제성장률 하락은 불가피하다며 그동안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여겨졌던 6% 이하 성장률 시대를 대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장위셴(張宇賢) 중국 국가정보센터 경제예측부 주임은 최근 본보 등 일부 외신기자들과 만나 “중국은 개혁개방 40년 동안 매년 평균성장률 9.4%를 지속해 왔다”면서도 “모든 나라가 고속 성장에서 중속, 저속 성장으로 갔다. 중국 역시 그럴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올해 6%대 성장률을 유지할 것이지만 앞으로 5∼6%대 성장률로도 안정을 유지할 수 있다”고 밝혔다. 중국 경제 규모가 현재의 90조309억 위안 규모에서 100조 위안(약 1경6830조 원)이나 110조 위안(약 1경8515조 원)으로 커지면 경제성장률 4%나 5%로도 안정을 유지하기에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장옌성(張燕生) 중국국제경제교류센터 수석연구원은 “중국은 성장률보다 민생, 일자리 창출, 환경, 빈곤 퇴치 등에 초점을 맞출 것”이라며 “단기적으로는 안정 추구, 중기적으로는 구조개혁, 장기적으로 고속 발전에서 고질량 발전으로 전환할 것”이라고 밝혔다.

베이징=윤완준 특파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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