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시중銀서 펀드가입 상담해보니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에 있는 A시중은행에 들러 펀드 상담을 받았다. 이 은행 직원은 기자가 자리에 앉자마자 위험등급 2등급의 주식형펀드를 권유했다. 창구 직원은 해당 펀드 상품이 담고 있는 주식 종목이 미국 고소득층이 향유하는 소비재 기업 위주로 구성돼 있다며 경기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 직원은 “저도 중위험 중수익 투자를 좋아하는데, 이 상품이 거기에 딱입니다”라고 말했다. 직원은 상품을 추천해 주면서도 기자의 투자 성향을 확인하지 않았다.
같은 날 서울 종로구 B은행. 이 은행 직원은 다짜고짜 손실 위험성이 높은 2등급 상품 2개와 3등급 상품 1개, 그리고 채권형펀드 1개를 먼저 기자에게 추천했다. 그런데 막상 현장에서 기자의 투자성향이 안전추구형에 가까운 4등급으로 나와 가입이 어려워지자 그 대신 모바일 가입을 권유했다. 직원은 “온라인에서 다시 투자정보확인서를 작성하면 고위험 고수익 상품도 가입이 가능하다”며 위험등급을 높이려면 어떻게 항목을 체크해야 하는지 ‘코치’도 해줬다. 이 직원은 “모바일로 가입할 때 꼭 저희 지점 이름을 넣어 달라”고 덧붙였다.
○ 투자성향 확인 않고 상품 정보도 잘 몰라
C은행은 펀드 상품에 대한 설명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다. 은행 직원은 적극투자형이 나온 기자에게 복수의 상품 소개서를 출력해줬다. 기자가 상품 구조에 대해 물었지만 직원은 “자세한 상품 설명은 모바일을 통해 직접 확인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 직원은 “저는 매스(mass) 고객을 대상으로 해드리고 있어서 여러 사람에게 일일이 맞춤형 설명을 해줄 수 없다”고 덧붙였다.
D은행 역시 기자의 투자성향을 확인하지 않은 채 수익률 10% 안팎의 펀드 상품이 좋겠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고위험 중위험 저위험 상품 비율을 5 대 3 대 2로 짜고 이에 맞는 펀드 7개를 추천했다. 이 직원은 “원금 손실 가능성이 물론 있지만 그만큼 수익도 크다”며 “요즘 괜찮으니 들어갈 만하다”고 상품 가입을 권유했다.
금융회사는 펀드 상품을 팔 때 투자성향 확인, 설명의무, 고령투자자 보호 등의 판매 규정을 준수해야 한다. 하지만 최근 은행들은 경쟁적으로 비(非)이자수익을 키우기 위해 펀드 영업에 열을 올리며 투자자 보호에 소홀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 금융당국도 책임 피할 수 없어
이런 문제는 금융감독원이 지난해 10월 실시한 은행의 파생결합펀드 판매에 대한 미스터리쇼핑 결과에서도 나타났다. 평가 결과 은행의 평균 점수는 64.0점(미흡)으로 2015년 대비 12.9점 하락했다. 90점 이상인 ‘우수’를 받은 은행은 한 곳도 없었고 12개 시중은행 중 9곳이 ‘미흡’ 이하의 점수를 받았다. 그러나 이렇다 할 후속 조치는 이뤄지지 않았고 최근 해외금리 연동 파생결합펀드(DLF)의 대규모 손실 사태에서 보듯, 투자자들의 피해는 계속 확산되는 상황이다.
투자자의 성향 판단이 금융사 자율에 따라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진다는 지적도 있다. 제윤경 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국내 상위 10개 증권사의 초고위험 성향 개인고객 비율은 최저 15.0%에서 최고 61.4%로 격차가 4배 정도 났다.
전문가들은 금융회사의 펀드 판매 관행과 은행 직원에 대한 성과평가 체계가 근본적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소비자도 펀드에 가입할 때 감내할 수 있는 손실 범위를 고려해 상품을 선택해야 한다. 이대기 금융연구원 은행·보험연구실장은 “은행 지점 및 직원 평가에 장기 고객 유치, 소비자 보호 등이 더 반영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형민 kalssam35@donga.com·남건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