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 11월 배재고보 운동장. 하얀 두루마기를 입고 야구모를 쓴 월남 이상재 선생이 시구를 하는 장면이 전해진다. 조선체육회(대한체육회의 전신) 주도로 열린 ‘제1회 전조선야구대회’다. 올해 100회를 맞는 전국체전의 효시가 됐다. 이듬해에는 정구와 축구를 더해 ‘조선체육대회’로 이름을 바꿨다. 당시 조선 민중은 스포츠에 열광했다. 대회 입장권이 대인 10전, 소인 5전이었고 입장권 판매로만 200원의 수입을 얻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관중 2000명 이상이 들어찼다는 계산이다.
▷조선체육회는 일제가 만든 ‘조선체육협회’에 대항해 1920년 7월 민족진영이 결성했다. 그해 4월 1일 창간된 동아일보의 변봉현 기자는 창간 열흘 뒤인 10일부터 3회에 걸쳐 ‘체육기관의 필요를 논함’이란 제하의 칼럼을 써서 분위기를 띄웠다. “8월 만국의 운동경기대회인 올림픽이 벨기에 수도 브뤼셀에서 열리는데, 국제 올림픽 대회에 왜 우리가 참가할 수 없는가. 권리가 없는 게 아니고 사용치 않음이다”라는 내용이다. 조선의 이름으로 조선의 청년들이 나가 실력을 겨루자는, ‘독립하자’는 말을 우회적으로 한 것이다.
▷4일 서울 잠실경기장에서 제100회 전국체전이 개막한다. 일주일간 2만5000여 선수가 47개 종목을 놓고 경합한다. 불꽃축제 등 대형 공연도 진행될 예정이라는데, 화려한 행사 이전에 ‘건민(健民)과 저항’을 창립이념으로 했던 100년 전 선조들의 뜻을 한 번씩 되새겨 보는 건 어떨까.
서영아 논설위원 sy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