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발을 통해 지지율을 끌어올린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왼쪽 사진)와 2015년 인재 영입으로 위기 돌파를 시도한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 동아일보DB
최우열 정치부 기자
황교안 대표가 ‘반(反)조국연대’ 기치를 내걸고 삭발까지 하니 지지율이 2∼3%포인트 올랐다. 삭발하는 황 대표 얼굴에 수염이 그려지고, 오토바이에 올라탄 패러디 사진이 온라인에서 나돌자 당 지도부는 환호했다. 면바지를 입고 ‘스티브 잡스식’ 경제비전 발표도 하니 대안정당 이미지도 갖추는 듯하다. 검찰 수사가 가속화되자 의원들은 “이제 검찰이 뉴스를 계속 만들어 줄 테니 지켜보면 된다”고도 했다. 조 장관 덕에 총선 승리가 손에 잡히는 듯했다. 내부적으로는 “조국이 큰일을 했다”는 얘기도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조국 사태가 길어지면서 심상찮은 조짐들도 속속 나타나고 있다. 총선을 위해 해야 할 중요한 일들은 멈춰 섰고 ‘포스트 조국’ 구상은 안 보이는 것이다. 오히려 각종 투쟁 과정에 참여한 정치적 대가를 요구하는 청구서만 당 안팎에서 남발되고 있다. 당을 위해 희생했으니 내년 총선 공천 등 보상을 달라는 주장이다.
지금 한국당은 조국 사태에 취해서인지 1년 전 상황을 깡그리 잊은 듯하다. 지난해 6월 지방선거에서 처참하게 패배한 뒤 한국당에선 인적쇄신론도 모자라 ‘당 해체론’까지 나왔다. “친박(친박근혜) 비박(비박근혜) 갈등 때문에 국민이 당을 버렸다”는 이유에서다. 물갈이 요구에 김병준 비대위가 현역 의원 21명을 당협위원장에서 잘라낸 게 불과 9개월 전이다.
더 큰 문제는 총선 승리를 위한 지상 과제로 제시됐던 보수통합과 인재영입 프로세스도 사실상 동결됐다는 점이다. 인재영입위원회가 영입 대상 20여 명 명단을 만들어 본인 의사까지 확인한 지 두 달이 넘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명단을 발표하지도 못했다. 8월 위기 상황 땐 황 대표가 “나를 내려놓겠다”고 했던 통합 이슈도 쏙 들어갔다. 바른미래당의 안철수 유승민 전 대표 측은 “황 대표의 연락을 받은 적 없다”고 했다. 민주당에서 불출마론이 불붙자 그제야 총선 준비 회의 열고 당무감사 일정을 확정했다. ‘조국 이슈’가 갑자기 사라져버리면 어찌할까 싶을 정도다.
2016년 20대 총선 직전 상황을 돌아보면, 여야는 뒤바뀌었지만 상황은 묘하게 비슷하다. 안철수 전 대표의 탈당 등 분열 위기 속에서 더불어민주당(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는 물갈이와 인재영입에 주력했다. 2015년 겨울부터 “표창원 이철희 조응천 영입” 등 뉴스가 쏟아졌다. 급기야 문 대표는 영입인사인 김종인 비대위원장에게 당권도 넘겼다. 총선 결과 민주당은 1당이 됐고, 여당인 새누리당은 야권 분열의 반사이익만 기대하다 진박 감별 논란에 빠져 패배했다. 제1야당이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조국 사태에만 기댄다면, 조국 사태는 언제라도 한국당에 독(毒)으로 바뀔 수 있을 것이다.
최우열 정치부 기자 dns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