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생이 ‘힙합 번역의 神’… 군의관 래퍼 ‘댄스디’ 권우찬
최근 서울 강남구 압구정로 자택에서 만난 권우찬 대위. 랩 번역가 ‘댄스디’로 통하는 그는 “켄드릭 라마의 ‘DAMN.’ 앨범 전곡 가사를 하루 만에 번역해 올렸을 때 가장 뿌듯했다. 내가 좋아하는 래퍼의 곡을 다른 사람이 먼저 해석해 풀면 속이 쓰리기도 하다”며 웃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현실에서 욕을 잘 못 쓰는 편이에요. 그래서 초기에는 욕설을 적나라하게 옮기는 게 꺼려져 애 좀 먹었습니다.”
모범생이었다. 가끔 학교 장기자랑 시간에 드렁큰 타이거의 랩을 한다는 정도를 빼면 말이다. 그가 랩 해석과 공유를 시작한 것은 중학교 3학년 때부터. 그의 외국 생활은 초등학교 때 부모를 따라 미국에서 1년 지낸 게 전부다.
“미국에 다녀와 가사를 알게 되니 신기해서 인터넷에 한두 곡씩 올리기 시작했죠.”
당시만 해도 랩 가사 해석이 귀했다. 힙합 사이트에 몇 곡 올려본 게 입소문을 탔다. 개인 홈페이지에 의뢰인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쏟아지는 의뢰에 응하다 보니 힙합의 매력에 더 빠져들었다. 독학도 계속했다. 외화를 자막 없이 보거나 랩 가사에 나오는 미국 대중문화 콘텐츠를 찾아봤다. 그는 여전히 일주일에 40곡꼴로 가사 번역을 자신의 홈페이지나 힙합 커뮤니티인 힙합엘이에 올린다. R&B나 록 가사도 의뢰가 오면 착수한다. 수임료는 없다. 군의관인 지금도 일과 시간이 끝나면 의뢰를 접수하고 해석에 착수하는 또 다른 일과를 시작한다.
해석 속도는 초기에 곡당 1시간 걸렸지만 지금은 10∼15분으로 단축됐다. 17년 번역 인생에서 가장 난해한 작업은 미국 록 밴드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대곡 ‘Murder Mystery’.
“8분 동안 왼쪽과 오른쪽 스피커에서 서로 다른 말을 계속 하는데 의미가 통하지 않고 난해하기 그지없었습니다.”
“미국 힙합은 돈, 성(性), 폭력에 관한 이야기가 다수입니다. 학창 시절, 연애사 같은 다양한 소재를 담아내는 한국 힙합이 더 재밌어요.”
‘.1(닷원)’이란 예명의 아마추어 래퍼로도 활동 중이다. 7일 첫 정식 데뷔앨범을 내놓는다.
“앨범 제목은 ‘항상성’입니다. 생물이 체내에서 체온, 혈압 등을 일정하게 유지하려는 성질. 저 역시 여러 외부 요소에도 불구하고 랩을 계속하고 있잖아요.”
의학 지식이 힙합 가사 번역에 도움이 될 때는 없을까.
그가 가장 좋아하는 해외 래퍼는 루페 피아스코. 그는 “미국 독립선언문부터 인디언 학살까지 역사와 문화의 다양한 맥락을 풀어내는 솜씨가 대단하다”고 했다.
2021년 4월 제대하면 순환기내과 의사로 살 생각이다. 바쁜 본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드는 만큼 가사 해석은 그만둘 계획이라고 했다.
“연구로 세계적 인정을 받는 의사가 되는 것이 인생의 꿈입니다. 물론 힙합은 저의 평생 동반자죠.”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