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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협상 날짜 던져놓고 ‘SLBM 포기 못 한다’ 으름장 놓는 北

입력 | 2019-10-03 00:00:00


북한은 어제 원산 동북쪽 해상에서 동해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로 추정되는 미사일을 발사했다. 미사일은 고도 910여 km로 460여 km를 날았다. 북한이 전날 저녁 북-미 간에 4일 예비접촉, 5일 실무협상을 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힌 지 13시간 만이다. 청와대는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열고 “북한이 SLBM을 시험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고 했다. 군도 “북극성 계열 SLBM을 고각(高角) 발사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북한은 3년 전인 2016년 8월 SLBM인 북극성-1형 시험발사를 했고, 2017년 5월엔 지상용 개량형인 북극성-2형 시험발사 이후 실전 배치에 들어간다고 발표했다. SLBM은 탐지가 어려운 수중 잠수함에서 은밀하고 기습적으로 발사할 수 있는 비장의 무기로서 동북아시아 군비 경쟁의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다. 북한은 SLBM 3, 4기를 탑재할 수 있는 신형 잠수함의 건조 사실도 공개한 바 있다.

북한은 지난 하노이 정상회담 결렬 이래 10차례나 단거리미사일을 발사했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작은 미사일일 뿐”이라며 사실상 도발을 용인했다. 이번에 북한이 실무협상 날짜를 일방적으로 공개하고 SLBM 도발에 나선 것은 기존의 단거리 미사일뿐 아니라 SLBM 역시 미국에 중단을 약속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중·장거리 미사일이 아닌 만큼 협상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미리 쐐기를 박은 것이다.

북한은 지난달에도 “미국과 협상할 용의가 있다”고 밝힌 다음 날 단거리 도발을 감행했다.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을 경질하고 잇단 유화 메시지를 보냈다. 북한은 ‘새로운 계산법’을 요구하면서 미국이 협상 테이블에 올릴 폐기 대상 목록에서 단거리미사일에 이어 SLBM까지 지워가고 있는 것이다. 북한이 한미 연합훈련과 한국의 전력 증강에 반발하며 체제 안전보장을 내건 데도 그런 노림수가 깔려 있다.

북한은 일단 핵 동결의 대가로 종전선언과 제재 완화 같은 보상을 받아낸 뒤 이어 핵물질, 핵탄두 순으로 단계별 협상을 해나가려는 의도를 노골화하고 있다. 그러면서 미사일은 자위수단이니 건드리지 말라고 무력시위까지 하고 있다. 물론 SLBM은 단거리 미사일과는 차원이 다른 만큼 미국도 쉽게 용인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북한 뜻대로 끌려가는 모양새라면 그 결과물로 어설픈 타협, 잘못된 합의가 나오지는 않을지 우려스럽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