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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남북 축구[횡설수설/이진구]

입력 | 2019-10-03 03:00:00


1990년 10월 11일 오후, 평양 능라도 5·1경기장에서 분단 이후 처음으로 남북통일축구대회가 열렸다. 1929년 시작된 경평(京平)축구가 1946년 중단된 후 44년 만에 평양에서 열린 축구 만남이었다. 당시 세계 최대라는 15만 명 규모의 능라도경기장을 꽉 채운 북한 관중은 ‘우리의 소원은 통일’ ‘고향의 봄’을 목이 터져라 불렀는데, 반주를 위해 배치된 악대만 30여 개에 달했다. 1차전은 2 대 1로 북한이, 같은 달 23일 서울에서 열린 2차전은 1 대 0으로 한국이 이겼다. 하지만 민족이 하나 된 감동 앞에 승패는 중요하지 않았다.

▷평양에서 열린 첫 남북통일축구대회는 숱한 화제를 낳았다. 한국팀 고문으로 참가한 당시 이회택 포항제철 감독은 경기 전날 6·25전쟁 때 헤어진 아버지 이용진 씨를 40년 만에 만났는데,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북한의 8강 신화를 쓴 박두익이 주선했다고 한다. 이듬해 세계탁구선수권대회 단일팀이 구성됐고 평양 범민족통일음악회, 뉴욕 남북영화제, 남북고위급회담 개최 등으로 이어졌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 한국과 북한전이 15일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열린다. 1990년 남북통일축구대회 이후 29년 만의 평양 방문경기다. 조 1위에 오른 북한의 경기력은 물론, 북한 관중의 광적인 응원전도 볼거리다. 북한은 이런 응원에 힘입어 2015년부터 평양에서 열린 7차례의 남자국가대표 축구 경기에서 단 한 번도 진 적이 없다고 한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팬으로 알려진 김정은이 경기장에 나타날지도 기대를 모으고 있다.

▷기대는 높은데 북한의 태도를 보면 이해가 안 가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채 보름도 남지 않았는데 2일 오후 현재까지 방북 경로나 인원 등 세부 사안에 대한 구체적인 확답을 주지 않고 있다. 숙소, 음식, 훈련장, 응원단 참가 여부 등은 물론이고 선수단의 비자 문제조차 아직 해결되지 않아 대한축구협회는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고 한다.

▷과거에도 북한은 이런저런 정치적 이유로 확정된 대회 장소를 변경한 적이 있다. 2008년 3월 26일 평양에서 열릴 예정이던 2010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아시아지역 예선 한국과 북한의 경기 장소는 막판에 중국 상하이로 변경됐다. 김일성경기장에서 태극기가 펄럭이고, 북한팀이 지는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정치를 위해 스포츠를 이용하는지, 경기에 이기기 위해 정치를 동원하는지 구별이 안 가지만, 29년 만에 찾아온 기회를 날리는 것은 북한에도 도움이 안 될 듯싶다.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