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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LF사태에 책임 회피 급급한 금감원[현장에서/김형민]

입력 | 2019-10-03 03:00:00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피해자가 지난달 27일 국회 앞에서 손팻말을 들고 국정조사를 요구하고 있다. 뉴시스

김형민 경제부 기자

‘명단 공개와 망신 주기를 통해 개선을 유도하겠다.’

금융감독원이 지난해 6월 은행의 파생결합 상품 판매 실태를 은밀하게 점검하는 ‘미스터리쇼핑’(암행점검)을 실시한 뒤 절차를 준수하지 않은 은행에 대해 이런 조치를 내놨다. 잘못한 은행의 명단을 대외적으로 공개하고 망신을 줘 개선을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당시 금감원의 미스터리쇼핑 결과 은행 대부분은 소비자 보호를 뒷전으로 미루고 판매 절차를 지키지 않았다. 최근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로 고객의 원금 손실을 초래한 KEB하나은행은 금감원의 작년 암행점검에서 100점 만점에 38.2점, ‘저조’ 등급을 받았다. 우리은행도 62.4점을 받아 ‘미흡’ 등급을 받는 데 그쳤다.

당시 금감원이 은행의 금융상품 판매와 관련해 실태 점검에 나선 것은 2015년 이후 3년 만이었다. 2015년만 해도 은행의 상품 판매 실태 관련 평균 점수는 76.9점이었지만 2018년 64점으로 13점 가까이 떨어졌다. 은행 대부분이 미흡 또는 저조 등급을 받을 만큼 소비자 보호가 미진했다.

하지만 금감원의 조치는 이름을 밝혀 망신을 주는 것, 지도공문 한 차례 발송, 실무자 간담회 한 차례 개최 정도였다. 그러고 나서 터진 것이 DLF 사태다.

투자자 수천 명이 원금 손실을 입은 이 비극을 금감원은 지난해 막을 수 있었다. 당시 금감원은 암행점검 후 보도자료를 통해 은행이 제출한 이행 계획을 분기별로 점검하고 미진한 은행에 대해선 현장점검까지 실시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행 보고서를 서면으로만 받아보고 현장점검은 한 번도 실시하지 않았다. 금감원은 DLF 사태가 터지고 나서 뒤늦게 “암행점검 제도만으로 금융회사의 영업현장에서 이뤄지는 불완전판매를 사전에 차단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다”고 했다.

금감원은 최근 정부의 전반적인 규제완화로 금융회사를 견제할 수단이 줄어들고 있어 감독에 한계가 있다고 해명한다. 김동성 금감원 부원장보는 1일 DLF 사태 중간점검 브리핑에서 금감원 책임에 대해 “최근 규제 완화 분위기 속에 사전적 규제를 두고 지나친 간섭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어 문제가 생기고 난 뒤에야 들여다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금감원은 그동안 소비자 보호 부문에서는 금융회사에 대한 감독 강도를 한층 높여왔다. 생명보험사의 즉시연금 사태, 암보험금 미지급, 키코(KIKO·파생금융상품) 사태 등 소비자 피해가 발생한 이슈에 대해선 소비자 입장에서 적극적으로 금융회사를 견제해 왔다.

이번 DLF 사태는 소비자 보호를 소홀히 한 은행의 책임이 크다. 하지만 금융시장을 감독·지도해야 하는 금감원이 선제적 대응을 하지 못한 책임도 작지 않다. 윤석헌 금감원장이 강조하는 소비자 보호가 구호에 그치지 않으려면 부실 감독의 책임을 금감원이 먼저 인정해야 한다. 금감원이 스스로 반성하지 않으면 어떤 재발 방지대책도 또다시 구두선에 그칠 것이다.
 
김형민 경제부 기자 kalssam3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