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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면 충분해!”…‘작은 집의 혁명’? 협소주택 뜨는 이유

입력 | 2019-10-03 13:49:00


“이렇게 좁은 땅에 어떻게 집을 짓지?” “한 두 사람 살기엔 이 정도면 충분해!”

1인 가구가 늘어나고, 부동산 가격이 치솟으면서 자투리 땅을 활용한 개성있는 작은 집 짓기가 트렌드로 떠올랐다. 넷플릭스에서도 리얼리티쇼 ‘Tiny House Nation’(도전! 협소주택)이 큰 인기를 끌면서 미니멀한 삶을 꿈꾸는 협소주택 열풍은 전세계적인 현상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서울 종로구 낙산공원에서 동대문으로 넘어가는 첫 동네. 한양도성의 고즈넉한 풍경과 숲이 어우러진 동네에 ‘세로로(SERORO)’라는 이름의 흰색 건물이 올 봄에 들어섰다. 33㎡(10평)에 불과한 땅에 5개 층을 차곡차곡 쌓아 올린 협소주택이다.

이 집을 지은 사람은 신혼부부인 최민욱 씨(39·스몰러건축 소장)와 정아영 씨(34·와인강사) 부부. 이들은 올해 3월 결혼하면서 이 집을 짓고 입주했다. 남편의 사무실은 대학로. 서울성곽을 따라 낙산공원을 걸어서 넘어 출퇴근을 한다. 야경이 멋진 핫플레이스 데이트코스가 통근길인 셈이다.

대부분의 집은 여러 개의 방들이 수평으로 놓여 있게 마련. 그러나 이 집은 침실과 거실, 주방 등이 블록처럼 수직으로 쌓여 있는 형태다. 필로티 주차장인 1층에서 올라가면 2층은 서재 겸 작업실, 3층은 주방과 거실, 4층은 침실, 5층은 옷방과 욕실로 구성돼 있다. 2,3층은 주로 일하거나 식사하고, 손님을 맞는 공간이고, 4,5층은 사생활 공간이다. 2층 작업실에서는 남편이 설계업무를 하거나, 아내가 와인강의 준비를 하는 등 집이 일터가 되기도 한다.

각 층에 있는 방은 불과 16.5㎡(5평)에 불과하다. 사용하는 공간이 4개 층이니 총 20평짜리 집이다. 그러나 실제로 들어가서 보면 답답하지 않다. 가장 큰 이유는 숲과 마을풍경이 한 눈에 들어오는 커다란 창문 때문이다. 2개면으로 나 있는 창문을 통해 비가 올 때 빗소리와 흙냄새, 나무향기가 퍼지고, 가을에는 단풍, 겨울에는 숲에 눈 내리는 모습이 창밖으로 펼쳐진다. 또한 딱따구리와 족제비와 같은 온갖 새들과 동물도 나타난다. 반면 도로와 접한 2개면은 프라이버시를 고려해 창문을 최대한 절제했다.

“이사 후 창 밖을 보며 이야기하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3층 주방에서 마주보고 커피를 마실 때면 경치 좋은 카페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듭니다. 저녁엔 집 근처 서울성곽과 낙산공원으로 산책을 가죠. 우리 부부는 ‘서울로 귀농한 느낌’이라고 말해요.”

협소주택의 가장 좁고 높은 집을 오르락내리락하려면 무릎이 아프지 않을까? 최 씨는 “낮과 밤 시간대의 동선을 철저히 고려해 설계했다. 아침에 일어나 씻고 내려오면 주로 밑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생각보다 불편하지 않다”고 말한다.

최 씨는 이 땅을 3.3㎡당 1000만 원씩 1억 원을 주고 샀다. 공사비는 1억7000만원으로 총 2억7000만 원이 들었다. 그가 협소주택을 지으려고 마음먹은 것은 5년 전. 친구가 서울 강동구에서 오피스텔을 구하려고 하는데 4억 원에 전세도 구하기 힘들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결혼하기로 약속한 여자친구와 함께 “대출금에 치이느니 차라리 감당할 수 있는 작은 집을 짓자”며 의기투합했다.

경기도에서 부모님과 함께 살던 최 씨는 통근시간을 낭비하지 않도록 서울에서 집 지을만한 땅을 찾아다녔다. 가격이 저렴해보이는 곳은 강남의 자투리땅, 강북의 산동네까지 다 뒤졌다. 드디어 대학로 사무실과 가까운 창신동에서 땅을 찾았다. 1930년대에 지어진 폐가였다.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아 지붕은 무너지고, 들고양이들의 아지트였던 곳이었다.

“집을 내놓은 지도 꽤 오래됐는데 아무도 사겠다는 사람이 없었답니다. 부동산에서도 ‘거기는 집을 못 짓는 땅’이라고 했어요. 과연 10평의 땅에 집을 지을 수 있을지 저도 솔직히 반신반의했습니다. 제가 설계했던 빌딩의 엘리베이터와 계단이 있는 공간보다도 작은 크기였지요.”

그는 1년 동안 설계를 다듬으며 고심했다. 그가 이 곳에 새 집을 짓기 시작하자 동네사람들은 환영했다. 보기 흉했던 폐가가 ‘귀여운’ 새 건물로 탄생하는 모습을 보고 따뜻한 응원과 격려를 보낸 것이다.


●“세상에 나쁜 땅은 없다”… 얇디얇은 집

서울 서초구 잠원동의 ‘얇디얇은 집’은 올해 서울시 건축상을 수상했다. “집이란 어떤 공간에 어떤 형태를 띠어야 한다는 상식을 깬 곳”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입구 쪽 폭이 1.4~2m에 불과한 땅에 지하1층, 지상4층짜리 건물을 지었다. 반면 높이는 20m에 이른다. 그야말로 책을 한 권 세워놓은 것처럼 얇고 길쭉한 집이다.

이 집은 영상촬영과 편집을 하는 두 부부가 산다. 1층과 지하는 작업실이고, 2층은 거실과 부엌, 3층은 침실과 자녀방, 4층에는 지붕 테라스와 옥탑방이 있다. 1개 층의 건평이 대략 33㎡(10평) 정도다.

원래 이 땅은 경부고속도로 소음을 막기 위한 완충녹지를 만들고 남은 자투리 땅이었다. 서울시 소유였지만 공공부지로는 활용하지 못해 일반에 매각했다. 여러 번 유찰된 끝에 5~6년 전에 주변 시세의 절반가격에 낙찰됐다. 이 땅을 구입한 매수자는 집을 짓기 위해 여러 설계사무소를 다녀봤지만 모두들 고개를 가로저었다고 한다. 그러다 지금의 주인이 다시 사들여 AnL스튜디오에게 맡겨 집을 지었다.

“서울에서 집짓기 좋은 땅은 이미 집이 다 들어섰다고 보면 됩니다. 공공이든 민간이 갖고 있는 땅이든 좁고 길거나, 도로변 모퉁이 삼각형 모양의 비정형적인 필지만 남았죠. 요즘에는 이런 자투리땅을 매입해 지은 개성 있는 집들이 단조로운 도시풍경을 바꾸고 있습니다.”(신민재 AnL스튜디오 소장)

이 집은 각 층이 복도처럼 길쭉하게 생겼다. 집을 좁게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 화장실이나 욕실을 빼고는 칸막이나 문을 거의 만들지 않았다. 또한 고속도로 완충녹지를 향해 커다란 창문을 만들어 자연을 감상하게 했다. 창신동 ‘세로로’ 집이나 잠원동 ‘얇디얇은 집’은 창문을 통해 숲과 공원의 풍경을 끌어들여 집이 넓게 보이는 효과를 낳았다. 협소주택의 평당 공사비는 보통주택에 비해 1.5배 이상 든다. 같은 면적이라도 층층이 쌓아 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신 소장은 “세상에 나쁜 땅은 없다. 땅이 무슨 죄가 있겠느냐.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목적에 맞지 않는다고 나쁜 땅인가. 작지만 그 땅의 컨디션을 잘 이해하고 활용하면 건물이 가치를 지니게 된다”고 말했다.


●협소주택에 산다는 것

작은 집에 산다는 것은 미니멀 라이프를 선택한다는 것이다. 가구나 물건들을 원하는 만큼 가질 수 없다는 뜻이다. 협소주택에 살기 위해서는 그동안 갖고 있던 살림살이를 버리고, 비워내는 과정이 필요하다.

넷플릭스의 ‘Tiny House Nation’에서도 진행자인 존과 잭은 협소주택에 살고 싶어 하는 의뢰인에게 먼저 짐을 줄이는 교육을 시킨다. 이 프로그램에서 출연자들이 협소주택으로 이사하려는 이유는 평생 모기지(주택담보대출)를 갚으며 살기 싫어서, 자녀 등록금을 내기 위해서, 청소 등 집안 관리에 시간을 뺏기지 않고 단순하게 살고 싶다 등 다양하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큰 집에서 살다가 16.5~33㎡의 집으로 옮길 때는 준비가 필요하다. 작은 집에 더블사이즈 침대, 쇼파, 책상, 주방, 화장실까지 집어넣는 신기에 가까운 인테리어 아이디어를 대방출하는 프로그램이지만 사람들의 요구는 끝이 없다. “큰 오븐이 있어야 해요” “턴테이블은 꼭 갖고 가야해요” “그랜드 피아노가 들어가야 해요”….

창신동 ‘세로로’ 주택을 지은 최 소장은 가구 크기까지 미리 염두에 두고 설계를 했다. 장롱과 냉장고와 세탁기 등의 가전제품의 크기를 미리 정해놓고 집 내부 벽체를 설계했다. 또한 가구가 들어올 수 있도록 창틀까지 한꺼번에 양쪽으로 열리는 대형 창문을 설치했다. 그는 “협소주택을 지을 때는 가구 크기는 물론 가구가 들어올 방식까지 계획하지 않으면 창문이나 유리를 뜯어내야 하는 불상사가 벌어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최 소장은 또한 단열재를 콘크리트 외부에 붙여 공간을 조금이라도 넓게 만들었다. 그는 “협소주택에서는 1,2cm도 아쉬운데, 단열재를 외부에 시공하면 단열효과도 더 크고, 평균 10cm 정도의 공간이 더 커지는 효과를 갖게 된다”고 말했다.

잠원동 ‘얇디얇은 집’에도 좁고 길쭉한 땅의 모양 때문에 시중에 판매하는 가구가 하나도 들어가지 않았다. 대신 현장에서 공간에 맞춰 가구와 주방기구를 붙박이식으로 제작해 설치했다. 다행히 거주하는 부부는 원래 가구나 짐을 많이 갖고 있지 않았다. 이사 올 때 옷가지 정도만 싸들고 왔다고 한다.


●전세계를 휩쓸고 있는 ‘작은 집의 혁명’

홍콩에서는 대형 콘크리트 수도관으로 만들어진 협소주택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홍콩의 건축사무소 ‘제임스 로 사이버텍처’가 만든 ‘오포드 튜브 하우스(OPod Tube House)’다.

홍콩은 세계의 주요 도시 중에서 내집 마련이 가장 어려운 도시로 알려져 있다. 특히 일자리를 찾아 홍콩으로 몰려든 청년들은 살인적인 집값 때문에 내집 마련의 꿈은 꿀 수 없는 상황. 이런 상황에서 과잉생산으로 빈터에 방치된 대형 콘크리트 수도관을 주거공간으로 활용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지름 2.5m, 길이 2.6m짜리 2개의 수도관을 연결해 지은 이 집의 내부 면적은 9.29㎡(약 2.8평)로 1~2인이 충분히 생활할 수 있는 크기다. 2017년 말 모델이 공개된 후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오포드 튜브 하우스는 창문은 따로 없고 전면의 통유리 출입문이 창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스칸디나비아식 원목 바닥으로 꾸며진 내부는 안락하며 다양한 선반들을 설치해 물건들을 보관할 수 있도록 했다. 소파 겸용 침대는 접이식으로 벽면에 장착돼 있으며, 냉장고, 전자레인지, 옷걸이, 가방 등 대형 물건들도 모두 맨 하단의 대형 선반 위에 올려놓고 사용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여러 개를 쌓아올려 아파트형 타운을 만들 수도 있으며, 빌딩 사이 공터나 다리 밑과 같은 사각지대에도 설치가 가능하다. 한 채 건설비용은 약 1700만 원인데, 비슷한 부동산 시세의 20%인 월 47만 원에 임대한다.

‘큰 것이 미덕’으로 여겨지던 미국에서도 삶을 다운사이징하기 위한 타이니 하우스(협소주택) 열풍이 거세다. 협소주택은 소셜미디어에서 질투심을 유발하는 인기 아이템이다. 인스타그램에서는 협소주택을 찍은 사진이 그림처럼 예쁘면서도, 탄소발자국을 줄이는 친환경적이고, 미니멀한 라이프스타일로 각광받는다. 한편 협소주택은 경제적 불평등, 엄청난 학자금 대출금에 시달리는 밀레니얼 세대의 불행을 상징하기도 하다. 미국에서는 2017년에만 협소주택 판매량이 67%나 증가했다. 협소주택의 평균가격은 4만6300달러. 협소주택을 가진 이들의 68%는 주택담보대출(모기지)를 갖고 있지 않으며, 협소주택에 사는 사람의 89%가 평균적인 미국인들보다 더 적은 신용카드 빚을 갖고 있다고 한다.

전승훈 문화전문기자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