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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홍 칼럼]진보 가면 벗어던진 친문… 좌파 몰락 예광탄

입력 | 2019-10-04 03:00:00

조국 옹호하고 檢 압박한 文 대통령
유연성과 원칙 둘 다 잃고 陣營 수장 자임
공정·정의는 진보 핵심 가치인데 그걸 짓밟은 조국 수호를 외침으로써
친문들, 진보 가치 팽개치는 패착 범해



이기홍 논설실장


최근 외국인 한국 전문가, 투자 전문가 등이 문재인 정권의 성향을 어떻게 규정해야할지 토론을 벌였는데 결론은 ‘소셜 내셔널리즘(social nationalism)’으로 모아졌다고 한다. 좌파 민족주의, 즉 사회주의(사회민주주의) 성향과 민족주의가 결합된 특징을 지닌다는 의견들이었다. 소련 식의 사회주의나 종북 등으로 매도하는 그런 이념몰이, 색깔논쟁 수준의 논의가 아니니 오해 말기 바란다.

외국인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은 문재인 정권의 성향이 북유럽의 사회민주주의와는 다르다는 점이었다. 이들이 가장 주목하고 우려한 점은 남북분단 일제강점 등의 역사·지리적 조건에 따른 민족주의가 평등주의 성향과 결합해 서민 대중을 선동하면 엄청난 폭발적 에너지를 가질 수 있다는 점이었다.

지난 주말 서초동 촛불집회를 보면서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는 이들이 적지 않다. 우리사회엔 FTA나 주한미군, 남북관계처럼 이념·진영에 따라 정반대의 견해를 가질 수 있는 사안들이 많다. 하지만 조국 사태는 그럴 사안이 아니라는 게 보통 사람들의 상식이었다.

그 누구도 조국 가족이 누린 특권 특혜와 위선이 정의와 공정에 어긋난다는데 이의를 제기하기 어려울 텐데, 어떻게 조국 수호를 외치는 이들이 또 저렇게 있을까…아노미적 혼란을 느낀 이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의아함은 두 가지 점을 인식하면 풀린다.

첫째는 우리 사회 좌파 진영의 조직력과 동원력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점이다. 민노총 등 노동운동 조직 외에도 한국사회에는 수를 헤아리기 힘든 좌파 단체 모임들이 있다. 그들의 투쟁 노하우와 전략은 군부독재시절부터, 자금·조직력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부터 쌓여왔다.

그들에게 정권은 중요한 물적 토대다. 좌파 정권이 창출되면 행정부와 공공기관 간부직 진출, 프로젝트 수주, 지원금 등등 거대한 좌파 산업이 생겨난다. 우파에 정권을 빼앗긴다는 건 그런 생존의 토대가 흔들리는 사변이다.

둘째, 모든 대중 집회가 어떤 가치나 대의를 위해 모이는 것이라는 선입견을 버려야 한다. 4·19혁명, 6월민주항쟁처럼 가치, 정의감 등 양심적 동기에 의해 거리에 나서는 경우도 있지만, 철저히 자신이 속한 집단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모이는 경우도 많다.

원시시대 부족 간 전쟁을 예로 들어 보자. 자기 부족이 더 도덕적이고 정의로워서가 아니라 싸우지 않으면 부족이 멸절한다는 위기감에서 기꺼이 목숨을 바쳐 싸운다.

그런 몰가치적 투쟁에는 조국이 공정 정의 같은 가치를 짓밟았다는 사실은 중요치 않다. 친문 인사들은 어떤 가치가 아니라 그저 문재인 정권을 지키기 위해 모인 것이다.

지금 검찰 개혁을 외치고 있는 이들 중 상당수는 만약 현 정권이 박근혜 정부이고 검찰이 권력 핵심 인사를 수사하는데 박 대통령이 무소불위 검찰을 질타하며 검찰개혁을 압박했다면 “검찰수호”를 외쳤을 것이다. 2년 넘게 진행된 적폐청산 수사 때 그 숱한 과잉수사와 인권침해, 피의사실 공표 논란에도 불구하고 친문진영에서 검찰을 질타한 이가 누가 있었나.

물론 집회 참가자중에는 검찰 과잉수사 피해자들, 사법 개혁 소신을 오랫동안 주창해온 이들도 적잖게 있었지만 다수는 문재인을 지키기위해 나선 친문이었다는 분석이 많다.

유시민 등 친문인사들과 여당 지도부에서 궤변사(史)의 신기원을 경신하는 발언이 쏟아져 나오는 것도 그런 부족 간 전쟁에 임하는 차원으로 보면 된다. 부족 간 전쟁에서 중요한 건 전투력이지, 논리와 이성 합리성이 뭐가 중요하겠는가.

그런데 친문이 공정 정의를 짓밟은 조국 특혜를 옹호하다보니 공정 정의라는 진보의 핵심 가치들을 팽개친 결과가 되어버렸다.

문 대통령부터 조국 임명을 강행하고 검찰을 압박함으로써 자신이 내걸었던 인사 원칙과 검찰 독립 등의 가치들을 저버리고 말았다. 공동체 전체를 아우르는 지도자가 아니라 진영의 수장을 자임한 셈이다. 유연성이 없으면 원칙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원칙마저 버린 것이다.

집회 참가자숫자를 놓고 과장을 일삼지만 민심, 여론의 가늠자는 참가자 숫자가 아니다. 자발성과 참여 동기의 순수성, 참가에 따르는 불이익 감수,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일반 시민들의 반응이다.

6월민주항쟁이 온 국민의 항쟁이었던 것은 가두시위를 벌이는 학생들 숫자 때문이 아니었다. 모든 택시가 멈춰 서서 경적을 울려주고 빌딩 창문마다 직장인들이 손수건을 흔들며 응원하고, 행인들이 최루탄 속에서도 박수를 쳐주는 그런 지지가 민심의 척도였다.

좌파가 공정 정의 같은 진보의 가치와 결별하면 어떻게 될까.

어차피 기층 민중은 계급·계층적 이해관계에 따라 투표하므로 조국을 수호하고 핵심 지지층만 잘 다지면 된다는 생각이 집권세력 내엔 팽배한 것 같다.

베네수엘라같은 사회에선 그런 게 통할 것이다. 그러나 교육 수준이 높은 나라에서는 계급적 이익 못잖게 시대정신과 가치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민중들이 계급적 이익만으로 투표한다면 어느 나라든 노동자·서민 기반 정당이 항상 집권할텐데, 선진국은 그렇지 않은 것은 누가 그 시대에 요구되는 가치를 구현하느냐에 승패가 갈리기 때문이다

친문은 이번에 공정 정의 같은 가치를 팽개친 채, 오로지 재집권을 목표로 한 전투력 응집력 동원력 넘치는 부족 이상도 이하도 아닌 집단이 돼버렸다. 우파가 공동체에의 헌신, 자기희생. 도덕성 등 보수의 가치를 팽개치면 몰락하듯이, 진보의 가치를 벗어던진 좌파에게 미래는 없다.

이기홍 논설실장 sechep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