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베스트셀러] ◇배꼽/오쇼 라즈니쉬 지음·박상준 엮고 옮김/388쪽·3800원(당시 금액)·도서출판 장원
인도 철학자 오쇼 라즈니쉬(1931∼1990)는 1980년대 명상 열풍을 주도했다. 라즈니쉬가 타계한 이듬해인 1991년 그의 우화 모음집 ‘배꼽’(도서출판 장원)은 발간 4개월 만에 50만 부를 넘기며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이후 라즈니쉬의 글을 편집한 비슷한 책(현재 판매 중인 윤미디어의 ‘배꼽’·작은 사진)이 여러 권 나왔지만 장원출판사 판 ‘배꼽’은 절판된 상태다. 동아일보DB
신동해 웅진씽크빅 단행본사업본부 편집주간
“죄송하지만 제가 너무 바빠서요. 첫 상담에서는 환자 분의 이야기만 들으면 되니까 여기 녹음기에다 하고 싶은 말을 좀 녹음해주실 수 있을까요? 그러면 제가 나중에 들어보겠습니다.”
그러자 환자가 말했다.
그러고 나서 정신분석가가 방을 나오는데, 2분도 지나지 않아 환자가 상담실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정신분석가는 깜짝 놀라 쫓아가 물어보았다.
“왜 그렇게 일찍 가십니까? 벌써 다 말씀하신 건가요?”
환자가 말했다.
“보십시오. 저도 아주 바쁜 사람입니다. 이미 여러 병원을 가봤고요. 상담실로 가보십시오. 당신 녹음기에다 대고 제 녹음기가 할 말을 하고 있을 겁니다.”
1990년대는 그야말로 우화와 명상 에세이의 전성시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빈 토케이어의 ‘탈무드’ 인기가 여전했고, 캔필드와 한센의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와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는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내려올 줄 몰랐다.
류시화라는 걸출한 기획자가 수많은 베스트셀러를 쓰고 번역해냈던 때도 이즈음이다. 사람들은 크리슈나무르티와 쇼펜하우어, 아우렐리우스를 읽었고 바바 하리 다스의 ‘성자가 된 청소부’와 발타자르 그라시안의 ‘세상을 보는 지혜’를 주고받았다.
당시엔 왜들 그리 우화 에세이를 읽어댔을까? 아마도 ‘진리의 경제성’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지금은 ‘근성이 있어야 성공한다’고 설득하기 위해 364개의 주석이 달린 416쪽짜리 ‘그릿’이 필요하지만, 우화 에세이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인생의 철리(哲理)를 꿰고 있는 스승이 들려주는 짧은 이야기 하나에는 수많은 해석과 응용이 가능한 진리가 담겨 있었다. 사실은 아닐지라도 그 어떤 것보다 농밀한 진실을 실어 날랐던 그 이야기들은, 학력과 성별, 직업과 무관하게 쉽게 읽을 수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우화 에세이를 들고 저마다의 답을 찾았다. 취향의 경계가 훨씬 옅었던 당시, 사람들은 우화 에세이와 시집을 부담 없이 주고받았고(시집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기현상의 이유였다), 음반 역시 그랬다. 공중 화장실에 가면 가슴 따뜻해지는 경구들이 붙어 있었고, 군대 내무반에서 ‘샘터’를 읽던 때였다.
“지식이란 무엇인가. 거기에 사람은 없다. 작은 녹음기가 또 하나의 녹음기에다 말하고 있을 뿐이다. 거기에 사람은 없다.”
신동해 웅진씽크빅 단행본사업본부 편집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