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미치코 가쿠타니 지음·김영선 옮김/208쪽·1만3000원·돌베개
‘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의 저자 미치코 가쿠타니는 CNN 앵커 크리스티안 아만푸어의 말을 빌려 “중립성 대신 명백한 진실을 믿어야 한다. 더 이상 진실을 진부하게 만드는 일은 멈춰야 한다”고 강조한다. 픽사베이 제공
그런데 왜 그의 말을 믿는 사람이 그리 많을까. 코네티컷주 출신 미국인이자 서적·문학비평가인 저자는 ‘진실 경시’를 가져온 미국 사회의 지적 풍토에 돋보기를 들이댄다.
미국의 지적 쇠퇴를 지적한 것이 그가 처음은 아니다. 작가 수전 저코비는 트럼프 취임 10년 전 ‘오락프로그램 중독, 종교근본주의, 지성주의를 미국의 전통적 가치관과 불화하는 것으로 보는 시각, 부실한 교육제도’가 지성의 쇠퇴를 불러왔다고 진단했다.
저자는 이런 상대주의가 20세기 후반을 휩쓴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본다. 포스트모더니즘은 객관적이고 단일한 진실이란 없으며 지식은 계급, 인종, 성(性) 등 다양한 프리즘을 통해 여과된다고 주장한다. 이에 따라 정당한 권리를 박탈당했던 약자와 소수자들이 자기 권리를 위해 다양한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문제도 발생했다. 지구의 시작은 6000년 전인가, 45억 년 전인가. 인간이 내뿜는 이산화탄소는 대기와 바다의 온도를 높이는가, 아닌가. 여기에는 계급 인종 성 등에 따른 프리즘이 작동할 여지가 없다. 진실과 거짓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급진적 포스트모더니즘은 ‘최선의 진실을 확인하려는 노력이란 헛수고’라고 비웃는다는 것이다. 여기서 저자가 포스트모더니즘 자체를 공격의 대상으로 삼은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포스트모더니즘과 상대주의의 잘못된 적용이 문제인 것이다.
트럼프도 이런 분위기에 편승한 주인공이었다. 예전부터 그는 “내 자산은 질문을 받을 때, 기분에 따라 달라진다”고 말하곤 했다. 이런 식의 상대주의는 나치나 볼셰비즘 같은 전 세기의 전체주의를 연상시킨다. 나치도 “과학 따위는 없다. 독일인의 과학, 유대인의 과학 등이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히틀러는 “판에 박은 문구를 반복하고 적에게 꼬리표를 붙이라”고 강조했다. 그가 유대인을 표적으로 삼은 것처럼 오늘날의 미국 집권자도 이민자, 아프리카계 미국인, 여성, 이슬람교도 등을 백인 노동자 계층의 희생양으로 내놓는다. 해나 아렌트는 ‘전체주의의 기원’에서 ‘전체주의의 이상적인 대상은 확신에 찬 당원이 아니라 진짜와 가짜의 차이가 없는 사람들’이라고 썼다.
극작가 아서 밀러는 2004년 대선 직전 “내가 아는 사람 가운데 조지 W 부시 지지자는 하나도 없는데 여론조사 결과가 어떻게 막상막하일 수 있지?”라고 의아해했다고 한다. 우리도 종종 비슷한 궁금증을 갖지 않는가.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