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미인계에 당해” 의문 줄이어… 시신도 못 찾아
서구 각국에서는 “21세기에 이런 식의 보복 살인이 웬 말이냐” “사우디가 겉으로만 개혁·개방을 강조하면서 부족국가 수준의 전근대성을 벗어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무엇보다 살해 배후로 지목받은 사우디의 실권자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34)가 겉으로는 ‘개혁 군주’ 이미지를 내세우지만 정적(政敵) 탄압에만 골몰하는 ‘냉혹한 독재자’란 비난이 거셌다.
사망 1년이 지났지만 그의 죽음은 여전히 많은 의문을 남기고 있다. 현재까지 드러난 사실도 ‘사우디 정부 관계자들이 약혼녀 하티즈 젠기즈와의 결혼에 필요한 서류를 발급받기 위해 이스탄불 총영사관을 찾은 카슈끄지를 살해한 뒤 시신을 유기했다’는 것뿐이다. 사우디 당국은 이 사실조차 처음에는 완강히 부인했다. 터키 정부의 집요한 압박과 전 세계적 비난 여론이 커지자 마지못해 살해 사실만 인정했다.
유족들이 무함마드 왕세자와 사우디 정부를 비판하지 않는 것도 특이한 점으로 꼽힌다. CNN은 4월 정부가 네 명의 자녀에게 총 400만 달러(약 48억 원) 상당의 주택을 제공했고, 매월 꾸준한 보상금도 지급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돈으로 유족 반발을 무마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일각에선 유부남이었던 카슈끄지가 학회 행사에서 만난 24세 연하 약혼녀 젠기즈와 사랑에 빠졌다는 점도 석연치 않다고 보고 있다. 그가 젠기즈를 만나지 않았다면 이혼을 결심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위험 지대’인 사우디 공관에 들어갈 일도 없었기 때문이다. 사우디 정부가 카슈끄지를 공관으로 불러들이기 위해 이른바 ‘미인계’를 쓴 것 아니냐는 의혹도 여전히 남아 있다.
시신의 향방도 오리무중이다. 시신을 토막 낸 후 화학약품을 이용해 완전히 다 녹였다는 설, 총영사관 관저 정원의 불가마에서 태웠다는 설 등이 난무한다.
카슈끄지가 살해당하기 오래전부터 사우디 당국으로부터 위협을 받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살해 약 한 달 전 그를 만났다는 중동의 한 대학교수는 기자에게 “당시 카슈끄지가 ‘이제 과거처럼 활발한 정부 비판을 할 수 없을 것 같다. 갈수록 부담이 커진다’고 했다. 이미 상당한 정도의 살해 위협에 시달렸던 것 같다”고 회고했다. 여전히 사건은 미궁에 빠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