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길 대사는 오전 9시 40분경 북한대사관을 나섰다. 그는 ‘회의 결과를 낙관하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두고 봅시다”라며 미소를 지었다. 협상장에 먼저 도착한 비건 대표도 김 대사를 웃으며 맞이했다. 두 사람의 얼굴은 기대감이 가득한 것으로 보였다.
화기애애했던 분위기는 약 2시간 후 달라졌다. 낮 12시 김 대사를 비롯한 북한 대표단은 검은 밴을 타고 회담장을 나와 북한대사관으로 돌아갔다. 다시 2시간 20분이 지난 뒤 회담장으로 돌아왔지만 표정은 완전히 굳어 있었다. 김 대사는 ‘왜 중간에 나왔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김 대사는 “협상은 우리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결렬됐다”고 말했다. 김 대사가 한 문장을 읽으면 곧바로 통역사가 영어로 통역했다. 외신 기자들에게 북한 입장을 알리려는 의도로 보였다. 김 대사 옆에 선 권 차석대표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각국 취재진의 반응을 면밀히 살폈다.
김 대사는 비장한 표정으로 미국에 체제 안전 보장 및 제재 완화를 요구했다. 약 12분간의 성명 발표가 끝난 후 북한 대표단은 이례적으로 취재진에 “질문을 3개 받겠다”고 말했다. 기자들이 “미국에서 체제 보장에 대해서 긍정적 의사 표시를 전혀 하지 않았냐” 등을 물었지만 ‘미국을 탓하는’ 대답만 되풀이했다.
미국 대표단은 협상 결렬 후에도 곧바로 입장을 발표하지 않았다. 특히 비건 대표는 스톡홀름 유명 식당에서 와인과 피자 등을 즐기는 등 여유로운 모습을 보였다. 미 국무부는 북한의 성명 발표 후 약 3시간이 지난 이날 오후 10시경 “우리는 창의적 아이디어를 가져갔고 좋은 논의를 가졌다”며 북한 주장을 반박했다.
북한 대표단은 출국 직전까지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6일 오전 10시 50분경 출국을 위해 북한대사관을 나서던 김 대사는 ‘2주 후 스웨덴에서 미국과 다시 만나냐’는 질문에 “미국 측에 물어보라”며 퉁명스럽게 답했다. 현지 시간 6일 오후 12시 40분 비행기로 스웨덴 스톡홀름 공항을 떠난 김 대사 일행은 러시아 모스크바를 경유해 7일 차이나에어 편으로 오전 베이징 서우두(首都) 공항에 도착한다. 김 대사 일행은 이날 낮 12시 고려항공을 타고 평양으로 돌아갈 것으로 보인다.
베이징=권오혁 특파원 hyu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