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 1992년 청주 부녀자 살해 이춘재 자백 사실로 확인… 재갈 물리고 양손 결박 ‘판박이’ 시인한 수원 여고생 2명 살인도… 수법 비슷해 진술 신빙성 높아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용의자 이춘재(56)가 10건의 화성 사건 외에 추가로 자백한 살인 범행 4건은 1988년부터 1992년 사이에 경기 수원시와 충북 청주시에서 발생한 미제 사건인 것으로 나타났다. 여러 건의 화성 사건과 유사하게 피해자의 의류로 양손을 결박하는 수법이 사용됐다. 경찰은 수사팀이 먼저 자료를 제시하지 않았는데도 이춘재가 추가 범행의 장소와 특징을 상세히 진술한 점에 비춰 자백의 신빙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6일 경찰에 따르면 이춘재는 1988년 12월 24일 수원시 팔달구 화서역 인근에서 발생한 여고생 김모 양(당시 18세) 살인 사건과 1989년 7월 3일 수원시 권선구 오목천동에서 있었던 정모 양(당시 17세) 살인 사건이 자신의 소행이라고 자백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양과 정 양은 발견 당시 자신의 옷 등으로 양손이 묶인 상태였다. 총 10건의 화성 사건 중 5건의 피해자가 손이 옷 등으로 묶인 채 발견됐다. 화성 사건 당시 수사팀장이었던 하승균 전 총경(73)은 “(김 양 사건은) 화성 사건의 ‘복사판’이었다. ‘화성의 그놈이 여기까지 왔구나’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당시 경찰은 이춘재를 범인으로 지목하지 못했다. 김 양 사건 땐 유력 용의자로 지목된 명모 군(당시 16세)이 경찰에게 폭행을 당해 숨지면서 수사가 흐지부지됐다. 정 양 사건 땐 용의자를 좁히지 못했다. 이춘재는 수원의 한 공업고등학교를 졸업했고, 1990년 2월엔 권선구의 한 주택에 침입해 금품을 빼앗으려던 혐의(강도예비 등)로 붙잡혔다.
하지만 경찰은 박 양 사건의 용의자로 이춘재가 아닌 박모 군(당시 19세)을 지목했다. 박 군은 법원에서 증거 부족 등의 이유로 무죄 판결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씨 사건도 미제로 남아있다.
이춘재의 자백이 사실로 확인되면 억울하게 범인으로 몰렸던 이들의 재심 청구 등이 예상된다. 형사소송법상 무죄를 입증할 명백한 증거가 새로 발견되면 이미 징역을 산 뒤라도 재심을 청구할 수 있고, 그 결과에 따라 국가에 형사보상이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이춘재가 자신의 범행이라고 자백한 1988년 9월 8번째 화성 사건의 경우 농기계수리공 윤모 씨(52)가 1989년 7월 범인으로 지목돼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징역 20년으로 감형된 뒤 2009년 8월에야 가석방으로 풀려났다. 윤 씨의 지인 A 씨(54)는 “원주교도소에 수감된 윤 씨를 면회하러 갈 때마다 그는 ‘너도 잘 알겠지만 나는 그런 걸(범행을) 할 사람이 아니다’라며 결백을 주장했다”고 말했다. 윤 씨의 가족은 “윤 씨가 법적 조치를 준비 중”이라고 전했다.
김재희 jetti@donga.com·신아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