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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균 칼럼]조국 內戰… 文대통령에게 대한민국은 무엇인가

입력 | 2019-10-07 03:00:00

가족 위해 몸 던지는 게 家長… 조국에게 가족이란 무엇인가
조국 임명 한 달, 국정 파행·국론 분열… 분식·궤변 일상화, 심리적 내전 상황
文, 失政보다 상식 붕괴 더 큰 책임… “韓國이 망국의 길로 가고 있다”



박제균 논설주간


검찰 개혁? 당연히 해야 한다. 무려 4명을 극단적 선택으로 내몬 현 정권의 적폐청산 수사가 이를 웅변한다. 검찰 수사를 받다가 그렇게 참혹한 일이 벌어진 경우는 이전에도 있었다. 도대체 한 인간이 어떤 정도의 모멸과 상실, 추락을 경험해야 그 막다른 선택을 할까.

사람마다 경우가 다르겠지만, 검찰 주변과 변호사 업계에 따르면 본인보다 가족을 건드리는 경우 그런 불행한 일이 벌어지곤 했다는 것이다. 특히 피의자 자신의 혐의와 관련 없는 별건수사 등을 자행해 자식의 장래를 위협할 때가 위험하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조국 법무부 장관은 참으로 특이한 존재다. 검찰 개혁이 아니라 국가를 개조할 권력을 준다고 해도 가족에게 화가 미치거나, 무엇보다 내 자식의 장래에 재를 뿌린다면 거절하는 것이 정상적인 인간이자 가장(家長)의 모습이 아닐까. 그럼에도 조 장관은 법원의 확정판결이 나기 전까지는 물러날 뜻이 없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도대체 얼마나 더 가족사가 까발려지길 원하는가. 과연 조국에게 가족이란 무엇인가.

당연히 조 장관 가족에 대한 수사는 별건수사가 아니다. 청문회에 임하는 장관 후보의 도덕성 검증을 위해 가족의 부정·비리 의혹을 파헤치는 건 언론의 의무다. 검찰은 언론에서 제기한 의혹에 따라 수사에 착수한 것이다. 검찰이 수사에 착수했을 때만이라도 조 장관이 사퇴했다면 국민들이 조국 가족의 막장 드라마를 시청하는 불편한 상황은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아니, 애초부터 법무장관이라는 달콤한 독(毒)사과를 베어 물지 않았다면 가족을 지킬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기야 문재인 대통령이 조국의 장관 임명을 강행하지만 않았어도 조국은 지나가는 바람에 불과했을 거다. 모레가 조국을 장관 자리에 앉힌 지 딱 한 달째 되는 날이다. 이 한 달 가까이 우리는 정상적인 나라에선 상상할 수 없는 국정 파행과 국론 분열의 기현상을 겪고 있다. 이른바 ‘조국 수호’를 위한 분식(粉飾)과 궤변이 일상화하고, 광화문과 서초동으로 갈려 ‘광장의 내전(內戰)’을 치르는 세상. 시쳇말로 이건 나라도, 뭣도 아니다.

그래도 기어코 조국 장관을 끌고 가려는 대통령은 대체 무엇을 바라는가.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아니라 ‘조국 내전’의 한쪽 진영 야전사령관이 되려는가. 이 심리적 내전이 지속되는 동안 우리가 사는 세상은 황폐해질 수밖에 없다. 도덕과 상식이 무너지고, 목적이 수단을 합리화하며, 내로남불과 특권이 판치는 세상으로 가는 금단의 문을 국가를 대표하는 대통령이 열어놓고 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국정(國政)을 망친 것보다 우리 사회의 건전한 상식을 무너뜨린 데 더 큰 책임을 느껴야 한다. 대통령의 잘못이 실정(失政) 수준이었다면 민심의 분노가 이렇게 거세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가 알던 대한민국이 아닌, 상식이 통하지 않는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는 암담함에 그 겨울 촛불시위 때도 나오지 않았던 사람들까지 거리로 나오는 것이다.

지금은 대한민국이 이럴 때인가. 일본에서는 TV 방송들이 연일 ‘양파남(男)’ 스토리를 생중계하다시피 한다. 일본에서 조 장관은 양파남으로 통한다. 까도 까도 의혹이 나온다는 뜻이다. 기분이 좋지 않다. 우리의 치부(恥部)가 다른 나라까지 알려지는 것이 부끄럽기도 하고, 연일 방송을 탈 정도로 일본인들이 이번 사태에 흥미를 느낀다는 점이 불편하기도 하다.

한 지한파 일본인은 “문재인 정권 들어서 내가 좋아하는 한국이 망국의 길로 가고 있다”고 내게 말했다. 한국 사정에 밝은 그가 조국 사태뿐 아니라, 현 정권의 외교·안보·경제 정책 등을 포괄해서 한 말이다. 그는 한일관계를 그르치고, 군사대국화를 꿈꾸는 아베 정권에 대해서는 매우 비판적이다. 그런 사람이 한국의 장래를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다.

망국? 먼 나라, 먼 훗날의 얘기가 아닐 수도 있다. 경제는 동력(動力)을 잃었지만, 집권세력은 무능하다. 지도층의 내로남불이 횡행하면서 사회의 공정과 상식이 무너지고 있다. 무엇보다 안보가 뿌리부터 흔들리는데 국민마저 극도로 분열하고 있다. 임기 절반도 안 돼 이런 나라를 펼치고도 방향 바꿀 생각이 없는 대통령에게 묻고 싶다. 과연 문 대통령에게 대한민국은 무엇인가.

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