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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 고질을 치료한 허준 처방은?[이상곤의 실록한의학]〈82〉

입력 | 2019-10-07 03:00:00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전쟁은 사람 몸에도 상흔을 남긴다. 면역 기능이 무너지면서 잦은 감기에 시달린다. 선조는 임진왜란·정유재란 이후 계속된 감기의 후유증으로 콧물이 목 뒤로 흐르는 후비루(後鼻漏)로 고생했다. 동의보감에 기록된 코 질환은 여러 종류다. 코가 막히는 비구(鼻f), 콧물이 흐르는 비체(涕), 누런 코가 나오거나 가래가 생기는 비연(淵), 재채기가 그치지 않는 비체(체), 코피가 나는 비뉵((뉵,육)) 등이 있다. 선조는 비연을 앓았다. 지금의 부비동염, 축농증이다.

비연은 코가 연못에 고인다는 뜻이다. 해부학적으로도 일리 있다. 뇌의 아래쪽에 위치해 공기주머니 노릇을 하는 부비동은 실제 점액의 샘이다. 부비동이 담고 있는 점액은 뇌를 식혀주고 코를 촉촉하게 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부비동염은 부비동과 외부를 연결하는 구멍이 염증으로 막혀 내부 점액이 썩으면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코가 뒤로 넘어가는 현상은 대개 부비동염의 후유증으로 생기는데 목의 이물감과 기침, 목의 불쾌감이 지속된다.

특히 선조는 기침으로 고생했다. 선조 32년 백사 이항복이 뽕나무 껍질을 꿀에 발라 구운 후 매화차와 같이 먹게 해 증상이 일시적으로 호전되는 듯했지만 선조의 후비루 증상은 감기에 걸릴 때마다 재발했다. 선조를 가장 힘들게 한 것은 가래가 목에 걸려 호흡이 곤란해지고 가슴이 답답해지는 듯한 증상이었다. 가래를 없애는 거담제 계통의 약물을 복용했지만 증세는 말끔하게 낫지 않았다.

감기만 걸리면 반복되는 기침과 가래의 원인을 정확하게 밝혀내고 치료한 이는 다름 아닌 당시 어의였던 허준이었다. 선조 34년 약방은 선조에게 청금강화탕(淸芩降火湯)을 처방했다. 청금강화탕은 콧물을 치료하는 약물이 아니라 기침을 치료하는 처방이었다. 가래가 목에 딱 붙어 얼굴이 붉게 달아오를 때까지 기침을 하는 증상을 다스린다. 반면 허준은 선조의 콧물 증상을 비연으로 지목했다. 비연은 위에서 밝혔듯 콧물이 부비동에 고였다가 넘어가는 후비루 증상을 의미한다. 선조의 기침 가래가 기관지에서 올라온 것이 아닌 코에서 넘어온 코 가래임을 정확히 진단한 것. 따라서 허준은 코 가래를 없애는 것에 집중했다. 살구씨와 뽕나무 껍질이 들어간 이진탕과 반과환이 바로 그것. 반과환은 반하와 과루인으로 구성된 약물로 목의 가래와 기침을 잠재운다. 허준은 선조의 입에서 “진저리 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처방했다고 한다.

코가 목으로 넘어가는 후비루는 가래가 목구멍으로 넘어가기 때문에 목구멍에 위치한 인후염과 귀인두관의 막힘, 목소리가 쉬는 경우가 잦다. 선조 또한 계속된 인후증과 목소리가 쉬는 실음증으로 치료를 받았다. 귀가 마비되거나 막히는 증상으로 치료를 받기도 했다. 선조의 후비루는 3년이 지나서야 완치됐다. 신하들은 다른 여러 의원을 추천했지만 선조는 허준에 대한 신뢰를 단 한 번도 내려놓지 않았다. 선조는 “허준은 고금의 의서에 통달하고 치료하는 것이 노련하다”고 틈만 나면 허준을 칭찬했다.

선조는 두 차례의 전란과 당파 싸움으로 면역력이 극도로 약화된 가운데에서도 57세까지 살았다. 당시로서는 장수한 셈. 허준은 어의로서 선조의 신뢰에 정확한 처방으로 보답했던 것이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