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비연은 코가 연못에 고인다는 뜻이다. 해부학적으로도 일리 있다. 뇌의 아래쪽에 위치해 공기주머니 노릇을 하는 부비동은 실제 점액의 샘이다. 부비동이 담고 있는 점액은 뇌를 식혀주고 코를 촉촉하게 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부비동염은 부비동과 외부를 연결하는 구멍이 염증으로 막혀 내부 점액이 썩으면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코가 뒤로 넘어가는 현상은 대개 부비동염의 후유증으로 생기는데 목의 이물감과 기침, 목의 불쾌감이 지속된다.
특히 선조는 기침으로 고생했다. 선조 32년 백사 이항복이 뽕나무 껍질을 꿀에 발라 구운 후 매화차와 같이 먹게 해 증상이 일시적으로 호전되는 듯했지만 선조의 후비루 증상은 감기에 걸릴 때마다 재발했다. 선조를 가장 힘들게 한 것은 가래가 목에 걸려 호흡이 곤란해지고 가슴이 답답해지는 듯한 증상이었다. 가래를 없애는 거담제 계통의 약물을 복용했지만 증세는 말끔하게 낫지 않았다.
코가 목으로 넘어가는 후비루는 가래가 목구멍으로 넘어가기 때문에 목구멍에 위치한 인후염과 귀인두관의 막힘, 목소리가 쉬는 경우가 잦다. 선조 또한 계속된 인후증과 목소리가 쉬는 실음증으로 치료를 받았다. 귀가 마비되거나 막히는 증상으로 치료를 받기도 했다. 선조의 후비루는 3년이 지나서야 완치됐다. 신하들은 다른 여러 의원을 추천했지만 선조는 허준에 대한 신뢰를 단 한 번도 내려놓지 않았다. 선조는 “허준은 고금의 의서에 통달하고 치료하는 것이 노련하다”고 틈만 나면 허준을 칭찬했다.
선조는 두 차례의 전란과 당파 싸움으로 면역력이 극도로 약화된 가운데에서도 57세까지 살았다. 당시로서는 장수한 셈. 허준은 어의로서 선조의 신뢰에 정확한 처방으로 보답했던 것이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