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함께 읽는 경제교실]
A. ‘인플레이션(inflation)’이라는 말은 사람들에게 꽤 익숙한 편입니다. 인플레이션은 상품과 서비스의 전반적인 가격 수준을 의미하는 물가가 지속적으로 오르는 현상이죠. ‘디플레이션(deflation)’은 이와 반대로 물가가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현상을 가리킵니다. 물론 기술의 발달로 생산과 유통에 드는 비용이 저렴해지면서 일부 품목의 가격이 내려갈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디플레이션이란 몇 가지 품목의 가격만 내려가는 게 아니라 상당히 많은 제품의 가격이 오랫동안 내려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소비자 입장에서 물가가 내리면 같은 돈으로 많은 물건을 살 수 있게 되니 디플레이션은 좋은 것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디플레이션이 발생하면 사람들은 앞으로 제품이나 서비스 가격이 더 하락할 것으로 예상하고 소비와 지출을 줄이게 됩니다.
그렇다면 경제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는 디플레이션은 자주 발생하는 현상일까요. 많은 국가가 일시적인 물가 하락을 경험했지만 실제 디플레이션으로 이어진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대공황’의 충격으로 1929년부터 1933년까지 물가가 27% 하락한 미국, 장기 경기침체로 1999∼2005년과 2009∼2012년에 걸쳐 각각 7년, 4년간 물가가 하락한 ‘잃어버린 20년’ 시기의 일본 등이 대표적 사례로 꼽힙니다. 이 중 일본의 경우 부동산이나 주식 같은 자산 가격이 크게 하락하면서 소비와 투자가 감소했고, 앞서 설명한 디플레이션의 악순환으로 오랫동안 물가가 계속 하락했습니다. 디플레이션이 한창이던 2002년에는 조사대상 품목의 약 70%가 가격 하락을 보이기도 했죠.
그럼 최근 한국의 물가 상황은 어떨까요. 올해 한국의 지난해 같은 달 대비 물가 상승률은 0%대에 머물고 있습니다. 9월에는 소비자물가지수가 0.4% 하락하며 사상 처음으로 월별 물가 상승률이 공식적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했습니다. 이에 한국도 일본처럼 디플레이션에 빠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대내외 경제 환경이 우호적이지 않은 점도 악재로 꼽힙니다.
그렇지만 소비자물가 하락의 가장 큰 원인은 농산물 가격이 지난해보다 내려갔다는 점입니다. 지난해 폭염으로 농축수산물 가격이 크게 올랐고, 올해는 날씨가 좋아 생산량이 늘면서 가격이 떨어졌습니다. 석유 가격이 작년에 비해 낮아져 휘발유 등 석유 제품의 가격도 내려갔습니다. 여기에 올해 9월부터 고등학교 3학년을 대상으로 무상교육이 시행되면서 수업료 부담이 크게 줄어든 점도 한몫했습니다.
최근 한국에서 나타난 물가 하락은 일시적인 요인에서 비롯된 면이 크며, 이 효과들이 사라지는 올해 말 이후에는 물가가 다시 오름세로 돌아설 것으로 정부와 한국은행은 예상하고 있습니다. 가격이 하락한 품목 비중도 약 30%에 그쳐 디플레이션을 겪었던 1990년대 일본과 비교하면 그 비중이 적습니다. 일본의 디플레이션 시기에 있었던 자산 가격 조정이 한국에서는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안동준 한국은행 조사국 물가연구팀 과장·이나영 한국은행 조사국 물가연구팀 조사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