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실무협상 북측 대표인 김명길 외무성 순회대사는 어제 귀국길 경유지인 중국 베이징에 도착해 “추후 회담은 미국 측에 달려 있다”며 “이번 회담은 역스럽다(역겹다)”고 했다. 그러면서 “미국이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그 어떤 끔찍한 사변이 차려질 수 있겠는지 누가 알겠느냐”고 위협했다.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실무협상 결렬의 책임을 미국에 돌리면서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도 재개할 수 있다며 거듭 위협한 것이다.
북한의 태도가 협상 판을 깨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더 큰 걸 얻어내려는 협상전술인지는 두고 볼 일이다. 하지만 벼랑 끝 협박을 통해 몸값을 높이려는 것은 북한의 상투적 수법이다. 북한은 이번에 미국에 대북 적대시 정책을 ‘완전하고도 되돌릴 수 없게 철회하는 실제적 조치’를 먼저 취하라고 요구했다. 이미 지난달 ‘제도(체제) 안전’을 요구하며 운을 띄운 북한이 미국의 ‘선(先)비핵화’ 요구에 맞서 체제안전 보장을 선결 요건으로 내세운 것이다.
이번 실무협상 결렬은 2·28 하노이 결렬의 북한식 되갚기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하노이에서 북한이 폐기해야 할 목록을 들이밀며 판을 흔들었듯이 북한도 이번에 미국의 ‘창의적 아이디어’와 유연한 자세를 충분히 떠보고 나서는 요구 수준을 대폭 높여 마치 빚 독촉하듯 선금부터 받겠다는 식으로 판을 흔든 셈이다. 이를 통해 북한이 노리는 것은 분명하다. 실무협상은 건너뛰고 정상 간 담판 이벤트로 직행하자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