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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개혁 적임자만 네 번째[청와대 풍향계/한상준]

입력 | 2019-10-08 03:00:00


청와대 고민정 대변인이 지난달 27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검찰 개혁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 사항을 발표하고 있다. 동아일보DB

한상준 정치부 기자

“법무부 문민화와 검찰 독립성·중립성 강화, 인권·교정·출입국 등 대국민 법무서비스 혁신이라는 문재인 정부의 개혁 청사진을 책임지고 추진할 적임자.”

조국 법무부 장관에 대한 설명이 아니다. 2017년 6월, 청와대가 발표한 박상기 전 법무부 장관의 발탁 이유다. 약 일주일 뒤, 청와대는 또 한 명의 적임자를 발표한다. 문무일 전 검찰총장이다.

“부정부패 척결이라는 국민적 요구에 부응할 수 있는 적임자라 판단했다. … 검찰 내부 신망이 두터워 검찰 조직을 조속히 안정시킴은 물론 검찰 개혁의 소명도 훌륭하게 수행해 나갈 것.”

검찰 개혁이라는 임무를 부여받은 두 사람은 각각 2년 2개월(박 전 장관), 2년(문 전 총장) 동안 자리를 지켰다. 대통령 임기의 3분의 1이 넘는 이 기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그런데도 최근 청와대와 여당은 연일 검찰 개혁을 강조한다. 개혁의 적임자라던 두 사람이 2년 넘게 근무했는데도 왜 검찰 개혁은 아직도 이뤄지지 못한 것일까.

우선 적임자라 믿고 임명했지만, 막상 두 사람의 의지나 능력이 부족했을 수 있다. 그랬다면 청와대의 인사 실패이고, 검찰 개혁이 정권의 지상 과제라면 서둘러 다른 인물로 교체했어야 했다. 검찰총장은 임기(2년)가 있어 쉽게 바꿀 수 없다 하더라도 법무부 장관은 언제든 대통령 뜻대로 바꿀 수 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교체를 택하지 않았다. 박 전 장관은 검사와의 대화도, 법무부 홈페이지를 통한 개혁 의견 수렴도 하지 않았지만 1987년 이후 29명의 법무부 장관 중 재임 기간이 세 번째로 길 정도로 롱런했다.

검찰의 저항도 더딘 개혁의 원인일 수 있다. 실제로 문 전 총장은 5월 검경 수사권 조정에 대해 “민주주의 원리에 반한다”, “엉뚱한 부분에 손을 댄 것”이라며 반발했다. 검찰이 법무부와 청와대를 정면으로 들이받은 것이다.

하지만 청와대는 문 전 총장의 반기에 “입장이 없다”며 지켜만 봤다. 대통령의 공개 경고도 없었고, 대통령이 직접 검찰총장을 지목해 “조속히 개혁안을 마련하라”는 지시도 없었다. 청와대가 침묵하니 여당이 침묵하는 건 당연지사. 문 전 총장은 무사히 임기를 마쳤다. 개혁의 적기로 평가받는 정권 초반의 2년은 그렇게 지나갔다.

올해 7월, 청와대는 세 번째 ‘적임자’를 찾았다며 윤석열 검찰총장을 발탁했다. 청와대는 “검사로 재직하는 동안 부정부패를 척결해 왔고, 권력의 외압에 흔들리지 않는 강직함을 보여줬다”며 “시대적 사명인 검찰 개혁과 조직 쇄신 과제도 훌륭하게 완수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8월 9일,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으로 법무부와 검찰을 관장했던 조 장관이 또 개혁의 적임자로 등장한다. ‘조국 정국’의 시작이다.

여기서 드는 의문은 과연 검찰 개혁이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만의 숙제일까 하는 점이다. 문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윤 총장에게 검찰 개혁안 마련을 지시한 직후 검찰 청사의 포토라인, 검사장급의 관용차, 일선 지검의 특수부, 심야 조사가 사라졌다.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의 지시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결국 돌이켜 보면 문 대통령은 정작 그 힘과 권한을 2년 넘도록 검찰에는 제대로 쓰지 않았던 것이다. 만약 문 대통령이 지난해 8월 김동연 당시 경제부총리와 장하성 정책실장에게 지시했던 것처럼,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에게 검찰 개혁을 강조하며 “직을 걸라”고 했다면 어땠을까.

정권 출범 이후 2년 넘게 검찰을 지켜만 봤던 것도, 윤 총장을 파격 발탁한 것도, 조 장관의 임명을 밀어붙인 것도 모두 문 대통령이다. 조 장관을 규탄하는 함성이 광화문을, 윤 총장을 성토하는 촛불이 서초동을 각각 채우고 있는 것도 결국 청와대의 선택에서 비롯된 일이다.

문 대통령은 5월 정권 출범 2년째를 맞아 참모들에게 “국민에게 무한 책임을 질 것을 새롭게 다짐해 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조국 정국’이 시작된 지 두 달째. 청와대는 과연 무한 책임을 지고 있는가.

한상준 정치부 기자 always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