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낡은 건물 허물고 마을회관 짓자… 주민들 사랑방엔 ‘웃음꽃’

입력 | 2019-10-08 03:00:00

대학생 공모전이 바꾼 서울 두 마을




서울 구로구 개봉3동의 이심전심 마을회관 2층에서 주민들이 함께 만든 음식을 나눠 먹고 있다(왼쪽 사진). 동작구 상도동 성대골에 소셜벤처 블랭크가 설립한 예술가들을 위한 청춘캠프. 구로구·서울시 제공

서울 구로구 개봉3동 271-8 2층 벽돌집(면적 153.52㎡). 이 집은 오랜 기간 사람이 살지 않고 방치돼 있었다. 인근엔 가로등과 폐쇄회로(CC)TV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아 불량 청소년들이 비행을 저지르는 장소로 활용됐다. 주민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이 주택이 꼭 필요한 시설로 바뀌었다. 2012년 8월 서울시가 주최한 제3회 ‘살기 좋은 마을 만들기’ 학생공모전에서 정지혜 씨 등 성균관대 재학생 4명은 이 주택을 마을회관으로 바꾸는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정 씨 등의 제안은 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서울시는 2013년 6월 해당 건물을 매입하고 일대를 주거환경 개선사업 지구로 지정했다. 이 주택은 리모델링을 거쳐 2015년 10월 ‘이심전심 마을회관’으로 다시 태어났다. 이심전심은 ‘이웃을 중심으로 안전하고 안심하는 마을’의 줄임말이다.

토박이가 많이 사는 곳이지만 개봉3동에는 주민들이 모여 소통할 만한 공간이 마땅치 않았다. 1층은 예체능 활동이 이뤄지는 다목적실, 2층은 회의와 함께 식사를 하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사업 시작은 학생공모전이었지만, 추진 원동력은 마을에 대한 애정이었다.

이심전심 주민공동체운영회 대표를 맡고 있는 김정식 씨(78·여)는 “일부 경로당은 폐쇄적으로 운영돼 마을주민들이 모이는 장소로 적절치 않았다”며 “연령 구분 없이 주민들이 모일 장소가 하나쯤 있었으면 했다”고 말했다. 그는 개봉3동에서 40년 넘게 살아온 토박이다. 김 씨 등은 바자회를 열고 음식을 나누며 마을회관을 홍보했고 현재 60∼70명이 이곳을 찾는다. 노래교실과 어르신을 위한 운동시간이 있고, 매주 화요일 점심엔 함께 음식을 만들어 나눠 먹는 ‘마을밥상’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매달 열리는 회의에서 마을회관 운영 방식을 정한다.

2009년 시작해 올해로 10회를 맞이한 ‘살기 좋은 마을 만들기’ 공모전은 서울시가 매년 1, 2개의 우수 작품을 선정해 청년이 실제로 마을 만들기 프로젝트에 참여할 기회를 제공한다. 도시재생 지역과 청년을 연결하는 참여형 프로젝트다.

2012년 3월 ‘살기 좋은 마을 만들기 학생공모전’ 준비에 나선 문승규 씨(33) 등 건축, 도시 전공 대학생 4명은 동작구 상도동의 성대골 마을을 찾았다. 이곳은 1970, 80년대 지어진 저층 주택이 많고 2만5000여 명이 거주하지만 초등학교도 없는 열악한 동네였다. 다만 주민들이 어린이도서관, 마을학교 등을 만들 정도로 자치활동은 활발했다. 이들은 학교에 친환경 에너지 시설을 설치하는 ‘들숨날숨 성대골 마을 이야기’라는 아이디어로 공모전에서 금상을 받았다. 서울시는 상도동을 주거환경 관리사업 대상지로 선정하고 기초조사를 문 씨 등에게 맡겼다.

문 씨는 아예 성대골로 이사했다. 문 씨는 “마을을 바꾸기 위해서 조사하다 보니 애착이 생겼다”고 설명했다. 그는 ‘블랭크’라는 이름의 지역 밀착형 소셜벤처도 설립했다. 블랭크는 공모전에서 받은 상금으로 2013년 4월 성대골에 33㎡ 크기의 단층 점포를 임차해 조리시설과 식탁 등을 넣어 공유 주방 ‘나눔부엌’을 운영했다. 2015년에는 사진작가, 그래픽 디자이너 등을 위한 작업 공간인 ‘청춘캠프’를 2017년에는 공유 주택 ‘청춘스테이’를 선보였다. 지난해 10월에는 ‘찾고 싶은 동네술집’을 모토로 커뮤니티 공간 ‘공집합’을 만들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알게 된 성대골 주민 22명도 여기에 투자했다.

문 씨가 찾기 전 성대골에는 여러 주민자치활동이 이어져 오고 있었다. 그중 하나가 에너지자립마을을 목표로 하는 김소영 대표(49)의 ‘에너지 슈퍼마켙’이 있다. ‘켙’의 받침 ‘ㅌ’은 에너지(Energy)의 알파벳 첫 글자 ‘E’를 뜻한다. 23㎡ 남짓한 가게에선 친환경 단열재, 고효율 발광다이오드(LED) 전구, 태양열 충전기 등을 판다. 2013년 11월 협동조합을 꾸려 2014년 1월 문을 열었다. 김 대표는 “태양광 설비를 무작정 늘리거나 에너지운동을 강제하는 것보다 제대로 관리·운영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다음 세대에 더 나은 세상을 물려주기 위해 마을에서 함께 노력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홍석호 기자 wil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