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국제영화제 VR관 인기몰이… SF-다큐 등 53편 생생한 체험 VR헤드셋 쓰고 마우스 쥐는 순간 폭풍우 몰아치고 사막 한가운데 관객이 무대서 홀로그램 공연도
영화 속 세계의 일부가 된 듯 몰입감을 선사하는 가상현실(VR) 영화 ‘더 키’(왼쪽 사진)와 부산국제영화제 관객이 직접 퍼포먼스에 나선 VR 체험 ‘홀로비트’. 관객의 체험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진화하는 영화의 미래를 엿볼 수 있다. ⓒThe Key·부산=박경모 기자 momo@donga.com
제76회 베니스 영화제 베스트VR상을 수상한 ‘더 키(The Key·셀린 트라이카트 감독)’는 ‘난민’을 주제로 한 작품. 모바일 VR 헤드셋을 쓰고 마우스를 양손에 쥐는 순간 사방이 어둡고 좁은 방으로 탈바꿈했다. 폭풍우가 몰아치며 좁은 방의 문이 뜯겨 나가는가 싶더니 어느새 거대한 사막 한복판 길고 긴 행렬의 한가운데에 서 있다. 지옥의 문지기처럼 보이는 거대한 괴물이 서류를 펼쳐놓고 눈앞에서 위협적인 삿대질을 했다.
‘더 키’의 동영상 예고편에는 감독 이름 앞에 ‘연출했다’는 의미의 ‘Direct’라는 단어 대신 관객이 겪을 체험의 여정을 구성했다는 의미로 ‘Journey’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이 인상적이다. 비좁은 방에서부터 마치 달의 표면이나 지옥의 중간쯤에 와 있는 듯한 황량하고 막막한 경험으로, 관객이 난민의 실상을 스크린으로 보고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그 두려움을 ‘체험’할 수 있도록 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2017년 처음으로 23편의 VR 영화를 상영했다. 올해는 상영작이 53편으로 늘었다. 특히 장르가 드라마와 다큐멘터리, 애니메이션, 공상과학(SF) 등으로 다양해졌다. ‘더 키’뿐 아니라 덱스터스튜디오가 제작한 ‘조의 영역’, 유혈 현장에 파견된 기자의 시각으로 체험하는 ‘코드 오브 프리덤 1991’, 미스터리와 살인 현장으로 들어가는 ‘파이어 이스케이프’ 등등. 영화 ‘매트릭스’의 네오처럼 가상의 세계로 완전히 들어간 듯한 착각을 일으키는 작품들이다.
VR 콘텐츠의 발달은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들을 제거하는 방향으로 진화 중인 하드웨어와 5세대(5G) 이동통신망과 클라우드 기술 개발 등과 맞물려 점차 가속화되고 있다. 360도 사방을 볼 수 있는 시야로 사각의 스크린에서 벗어난다는 점, 관객이 직접 움직이며 주변을 둘러보고 영화 안의 요소들을 만지고 작동할 수 있다는 점에서 VR 영화는 관객들에게 완전히 새로운 체험을 선사한다. 세계 3대 영화제인 베니스 영화제가 2017년 VR 영화 경쟁부문을 신설하는 등 세계 각국 영화제들도 앞다퉈 VR 섹션을 마련하는 추세다. 지난해 베니스 영화제에서는 채수응 감독의 ‘버디’가 VR 경험상을 수상하는 등 국내 VR 콘텐츠의 수준도 발전 중이다.
국내에서는 바른손이 영화 제작 노하우와 더불어 VR 콘텐츠를 개발 중이며, 가상특수효과(VFX) 전문기술을 보유한 덱스터스튜디오 역시 웹툰 등 다양한 지식재산권(IP)과 결합한 VR 콘텐츠를 제작·배급하고 있다. 박재하 바른손 VR게임사업부문 팀장은 “초기에는 단순하고 자극적인 효과에만 중점을 둔 콘텐츠가 주목을 받았지만 VR 콘텐츠는 잘 짜인 스토리와 기술이 결합될 때 효과가 확장된다”며 “기술 발달과 아울러 콘텐츠가 성숙하는 2022년경 본격적인 시장이 열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산=이서현 기자 baltika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