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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평인 칼럼]여론에서도 동원에서도 진 조국 수호

입력 | 2019-10-09 03:00:00

“檢 개혁 왜 꼭 조국이 해야 하지”… 간단한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정권
광화문 집회, 서초동 집회에 비해 수적으로 앞서고 에너지도 더 커
그러나 민의로 여기지 않는 대통령



송평인 논설위원


장삼이사(張三李四)라도 “조국 논란에 왜 갑자기 검찰 개혁?”이라는 의문을 품을 정도로 사리를 분별한다. 그들은 “검찰 개혁은 해야 한다, 그런데 그걸 왜 조국이 해야 하는 거지?”라고 묻고 있다. 누구라도 쉽게 알아들을 이 주장을 두고 대통령이 국민의 뜻이 검찰 개혁으로 모아지고 있다는 딴소리를 하고 있으니 숨이 막힐 지경이다.

대통령은 동남아 순방을 마치고 귀국하자마자 조국 논란을 검찰 개혁 프레임으로 바꾸는 시동을 걸었다. 다음 날인 9월 28일 서울 서초동 검찰청사 앞에서 대규모 검찰 개혁 요구 집회가 열렸다. 자발적이란 주장은 한 동아일보 기자에게 잘못 보내진 더불어민주당 조직국의 동원 메시지에 의해서도 거짓임이 드러났다. 기껏해야 몇만 명에 불과한 집회 참석자를 정권의 선전기관들이 100만 명이니 하며 부풀리자 “우릴 무슨 핫바지로 아느냐”며 화가 난 국민들이 10월 3일 광화문으로 몰려나왔다. 그것으로 대통령의 홍위병식 동원 정치는 실패로 끝났다. 광화문 집회에 맞서기 위해 10월 5일 서초동 집회가 조직됐으나 역부족을 드러냈다. 여론에서도 지고 대중 동원에서도 진 것이다.

난 9월 28일 서초동 집회 때는 예술의전당에서 공연을 보느라 우연히 그 근처에 있었기 때문에 참석자 수가 턱없이 과장된 사실을 알고 있었다. 10월 3일 광화문 집회와 10월 5일 서초동 집회는 직접 가서 봤다. 10월 5일 서초동 집회는 9월 28일 서초동 집회보다 훨씬 커지긴 했으나 광화문 집회에 미치지 못했다.

“당신이 세 봤냐”고 물어볼지 모르겠다. 그러나 세 보지 않아도 집회에 가서 그 사이를 누비고 다녀보면 안다. 광화문 집회 때는 광화문역에 지하철이 서지 못해 서대문역에서 내려 10분을 걸어갔다. 종각역 시청역에서도 걸어오고 있었다. 서초동 집회 때는 서초역에서 내려 올라갈 수 있었다. 광화문 집회에는 면적이 훨씬 넓은데도 참석자 상당수가 서 있었고 서초동 집회에는 참석자 대부분이 앉아 있었다. 화장실은 광화문 집회가 훨씬 불편했다. 광화문역 화장실에는 수십 m씩 뱀줄을 섰으나 서초역 인근에 마련된 임시화장실은 거의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양이 아니라 질로 보면 일사불란한 서초동 집회가 일견 앞서는 듯했다. 서초역 사거리에서 사방으로 스크린이 설치되고, 동일한 화면에 따라 참석자들은 일제히 ‘조국 수호’ ‘검찰 개혁’을 외쳤다. 광화문 집회는 주최하는 쪽도 참가하는 쪽도 시위에 익숙하지 않았다. 함께 부를 노래조차 마땅치 않았다. 게다가 자유한국당 주최 집회 따로, 기독교인 중심 집회 따로, 우리공화당 집회 따로, 예비역 군인 중심의 원조 태극기 집회 따로였다. 그 어느 쪽에도 마음 붙일 곳 없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 그럼에도 조국이란 사람 때문에 한날한시에 한자리에 모였다는 점에서 분출된 에너지는 훨씬 더 컸다고 할 수 있다.

서초동 집회에서는 검찰의 독립성 같은 우리 사회의 중요한 공준마저 무너지고 있었다. 사회자가 “대통령 말도 듣지 않는 검찰을 이대로 내버려둬서는 안 된다”고 하자 참석자들은 “옳소”라고 외치며 팻말을 흔들었다. 대통령으로부터 검찰의 독립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그들도 모르지 않을 것이지만 현 대통령은 예외였다. 마오쩌둥이 하는 건 다 옳다는 홍위병의 범시론(凡是論)처럼 ‘이니’가 하는 것은 뭐든 옳은 것이다.

서초동 일대를 꽉 채운 대대적 조국 수호는 당성(黨性)만 좋으면 잘못까지도 눈감아주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사회의 전조처럼 보였다. 유시민과 공지영 등의 ‘닥치고 조국 옹호’는 당파(黨派)를 넘어선 보편적 판단이 옳은 게 아니라, 자신들은 진리를 담지하고 있고 따라서 자신들은 당파적일 때 더 옳다는 위험한 ‘진리의 정치’를 드러냈다. 그것이 진중권 같은 이들에게 윤리적 패닉 상태를 초래했다.

대통령은 두 집회를 두고 대의 정치가 민의를 반영하지 못할 때 국민이 직접 의사 표시를 하는 것은 대의민주주의를 보완하는 긍정적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민의를 반영할 주체가 누구보다 대통령 자신인데 국회 탓만 하고 있다. 대통령에게 조국 파면을 요구하는 광화문 집회는 민의도 아니란 말인가. 국회 탓이라면 왜 여의도가 아니라 서초동에서 모여 검찰 개혁을 외치는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아니 경험하고 싶지 않은 대통령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