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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거듭 아니라지만… 점점 커지는 디플레 논쟁[광화문에서/유재동]

입력 | 2019-10-09 03:00:00

유재동 경제부 차장


‘경제는 심리’라는 말을 자주 쓴다. 경기 흐름이 실제 사람들이 마음먹은 대로 가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 경제 전망이 좋고 자신의 미래도 탄탄하다고 본다면 돈을 쓰는 데도 어느 정도는 너그러워질 것이다. 하지만 경기가 나쁠 것으로 보이면 사람들은 지갑을 더 닫게 되고 이는 소비와 고용에 연쇄적으로 영향을 준다. 그래서 비관론이 더 커지기 전에 서둘러 가계나 기업의 경기 인식을 긍정적으로 돌려놓는 것은 정부의 중요한 책무 중 하나다.

이런 현상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디플레이션이다. 가장 가까운 일본의 사례를 보자. 1999년부터 2004년까지 5년여간 일본은 장기적인 물가 하락을 겪었다. 그때 일반 생필품뿐 아니라 주택 등 자산 가격도 함께 곤두박질쳤다. 보통 물건 값이든 집값이든 떨어지다 보면, 사람들이 ‘이젠 더 안 내리겠지’ 생각할 때쯤 저가 매수세가 들어오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어디가 바닥인지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워낙 비관 심리가 팽배하다 보니 오랫동안 가격 하락이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극심한 비관과 공포가 더 큰 불황을 낳은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도 디플레이션 논쟁에 제대로 불이 붙었다. 지난달 물가상승률은 1년 전보다 0.4% 떨어졌다. 사실상 마이너스(―0.04%)였던 8월에 이어 두 달 연속 하락세다. 소비자들의 물가 전망을 나타내는 기대인플레이션율도 2002년 통계 작성 이후 처음 2% 아래(1.8%)로 내려갔다. 올 들어 성장률과 수출, 물가 등 주요 경제지표에 예전에 없던 마이너스 부호가 붙으면서 경제 역주행 우려가 커지는 상황이다.

상황이 심상치 않게 되자 정부는 망가진 경제 심리를 되살려 놓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공식 회의와 보고서, 언론 인터뷰 등 가용 채널을 총동원해 “지금의 물가 하락은 여러 요인이 겹쳐진 일시적인 현상에 불과하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그러면서 “디플레 우려는 과장됐다”, “우리 경제의 펀더멘털은 우수하다”, “위기설은 기우에 불과하다”와 같은 말들도 곁들인다. 심지어 여권 일각에선 경제 사정이 안 좋다고 하는 언론 보도들을 꼽아 가짜뉴스로 규정하는 모습도 보인다.

위기 심리를 진정시키고 나쁜 지표를 숨기는 것은 어느 정부나 해왔던 일이다. 그런데 이 정부에서는 이런 식의 예민한 대응이 오히려 시장의 불안감을 부추기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우리 경제에 문제가 없다”는 정부의 설명이 현실과 동떨어진 지나친 자신감에서 나오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우리 경제가 침몰 직전의 상황까진 아니라 해도 여러 가지 구조적인 문제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경제지표가 나쁠 때마다 외부 탓으로 일관해 왔고 기존 정책 노선을 수정하는 데는 인색했다.

지금이 디플레이션이라 주장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만 앞으로 디플레이션과 비슷한 양상으로 흐를 수 있어 걱정된다는 목소리가 있을 뿐이다. 이런 불안 심리를 잘 다독이기는커녕 ‘가짜뉴스 프레임’을 씌워 공격해대면 정책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고 역효과만 더 커질 것이다. 그렇게 무너진 경제 심리는 나중에 어떤 수단으로도 회복이 어려울 수 있다.

유재동 경제부 차장 jarret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