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8월 전북 익산에서 발생한 ‘약촌 오거리 살인 사건’은 택시기사 살인범으로 지목된 최모 씨(당시 16세·다방 커피배달원)가 자백해 10년을 복역한 사건이다. 출소한 최 씨는 2013년 재심을 청구했고, 3년 후 무죄 판결을 받았다. 당시 경찰은 최 씨를 여관으로 끌고 가 자백을 강요했다고 한다. 최 씨는 보상금 8억4000여만 원을 받았지만 잃어버린 청춘을 되찾을 수는 없었다. 재심 증인 출석을 요구받은 수사팀원 한 명은 심리적 압박에 자살했다.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진범으로 지목된 이춘재(56)가 모방범죄로 결론 났던 8차 사건(1988년 9월 16일 발생)도 자신이 저질렀다고 자백했다. 당시 진범으로 지목된 윤모 씨(52)는 재판에서 “혹독한 고문을 받고 허위 자백했다”고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윤 씨는 20년을 복역하고 출소했다. 이춘재가 자백한 1988년 12월과 이듬해 7월 수원에서 발생한 2건의 여고생 살인 사건도 당시 부녀자 폭행범을 용의자로 모는 등 부실 수사 끝에 미제로 남은 상태였다.
▷화성 8차 사건은 다른 사건과 달리 피해자가 외부가 아닌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고, 옷가지로 결박당하거나 재갈이 물려 있지도 않았다. 현장에서 발견된 체모에서 중금속이 검출됐는데, 경찰은 이를 근거로 인근 용접공 등 400여 명의 체모를 채취해 피해자 오빠의 친구였던 농기구 수리공 윤 씨를 진범으로 특정했다. 경찰은 검식에 사용한 방사성동위원소 감별법을 소개하며 과학수사의 쾌거라고 자화자찬했지만, 지금은 허점이 많아 사용하지 않는 방법이다. 당시 이춘재는 피해자 집 한 집 건너에 살고 있었다.
▷억울한 옥살이만큼 사법 정의를 불신하게 만드는 것도 없다. 윤 씨가 실제 무고한지는 추후 밝혀지겠지만, 만약 누명이라면 30년간 살인범으로 살아온 그의 인생은 무엇으로 보상받아야 하나. ‘약촌 오거리 사건’을 재구성한 영화 ‘재심’에는 진실을 찾으려는 한 형사가 “차라리 지옥이 낫지. 거기는 지은 죄만큼만 벌 받잖아”라고 말하는 대목이 있다. 현실보다 지옥이 더 공정해서는 안 된다.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