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강춘 국립국어원장이 8일 서울 강서구 국립국어원에서 뉴스1과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9.10.8/뉴스1 © News1
“한글의 특징과 디지털문화가 결합된, 우리만의 ‘호사’가 아닐까요.”
573돌을 맞이하는 한글날을 앞둔 8일 서울 강서구에 위치한 국립국어원에서 뉴스1과 만난 소강춘 국립국어원장은 글자모양을 활용한 ‘말놀이’에 대해 일단 긍정적인 평가를 했다.
최근 젊은 세대 사이에서는 인터넷 등에서 비슷한 글자모양을 활용한 ‘말놀이’가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고 있다. 이를 테면 ‘명곡’을 ‘띵곡’, ‘멍멍이’를 댕댕이‘, ’귀엽다‘를 ’커엽다‘ 처럼 비슷한 글자로 바꿔부르는 것이다. 혹은 글자를 거꾸로 읽은 ’롬곡‘(눈물)과 같은 사례도 있다.
◇“1920년대에도 ’젊은 것들’은 버릇이 없었다”
소 원장은 “어느 시대든 그 시대의 언어 현실과 사회상이 반영된 신조어나 유행어는 존재했다”면서 “한글을 고정화하지 않고 창의적인 방법으로 친근하게 활용하는 재기발랄함을 엿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넓게는 줄임말과 신조어를 포함한 ’유행어‘, 또 청소년들 사이에서 비속어가 무분별하게 사용되는 현상 또한 같은 맥락에서 봐야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빅데이터를 통해 연구를 해본 결과, 1920년대에도 어르신들은 젊은이들이 ’버릇이 없다‘고 느꼈다는 내용이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즉 세대마다 ’젊은 세대‘에 대한 기성세대의 우려가 없지 않았고, 이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이것이 세대 간의 소통단절로 이어지는 것은 경계해야한다고 했다. 소 원장은 “젊은 세대의 문화도 중요하지만, 결국 큰 언어사회의 소통이라는 측면을 염두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언론 매체 등 공적인 장에서 소통할 때에는 이같은 ’신어‘의 사용을 주의할 필요가 있다. 상대와 원만하게 소통할 수 있도록 쉬운 글과 말을 사용하는 태도가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언어가 발전하면 나라도 부강해진다”
국립국어원은 국민이 언어생활을 편리하게 할 수 있도록 다양한 연구사업을 추진하는 한편 국어 발전을 위한 어문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하는 기관이다. 이에 따라 어문규정과 외래어 표기용례, 표준국어대사전과 개방형 사전인 ’우리말 샘‘ 을 서비스하고 있다.
소 원장은 언어가 발전하면 자연스럽게 나라도 부강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점차 인공지능이 발전함에 따라 이를 언어와 연계시키는 작업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소 원장은 “인공지능의 핵심은 컴퓨터와 사람이 언어로 소통하는 것”이라면서 “이를 얼마나 잘 다듬어서 만들어 놓느냐에 따라 국가의 중요한 토대가 될 수 있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가 IT 기술이 선진국보다 10~20년 정도 늦었다고 하는데, 그에 반해 분절화 등 한글이 가진 장점이 탁월하기 때문에 언어가 디지털적으로 활용되는 것으로는 상당히 따라잡은 상황”이라면서 “문어체와 구어체, 채팅, 일상언어와 격식을 갖춘 언어 등 다양한 상황에 따른 데이터베이스만 구축이 된다면 한발 더 앞서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더불어 시·청각장애인들의 언어 역시 국가적으로 중요한 정책이라고 덧붙였다. 2016년부터 설립된 국립국어원 특수언어진흥과에서는 한국수어사전 편찬과 말뭉치 구축 등 장애인들을 위한 사업을 본격화하고 있다. 소 원장은 “장애인 복지가 발달됐다고 하는 선진국에서도 장애인들을 위한 언어에 대한 정부 차원의 지원은 거의 볼 수 없다”고 첨언했다.
◇한글날, 세종대왕 ’애민정신‘ 다시금 되새겨야
소 원장은 한글날의 진정한 의미는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편찬할 때의 ’애민(愛民)정신‘을 이해하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훈민정음 언해본에도 나타나있듯, 세종대왕은 백성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제 뜻을 펴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고 문자를 만들었다”면서 “당시 기득권의 엄청난 반대를 무릅쓰고 만든 것이 오늘날의 한글”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국립국어원에서 공공언어를 개선하자, 비속어를 쓰지 말자, 외래어를 순화하자는 등의 제안을 할 때 여전히 반대 여론이 적지 않다. 하지만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만드실 때의 그 마음, 소통을 위한 것임을 생각해본다면 결국 해결의 실마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어학자 개인으로서는 남북을 포함한 ’한국어‘가 하나로 통합되는 것을 숙원으로 삼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소 원장은 “남북 언어가 점차 이질화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통합 이전에 서로의 언어에 대한 공유가 필요하다”면서 “개방형 사전인 ’우리말 샘‘을 기반으로 그것이 가능하다고 본다. 내년에는 남북 간 교류가 이어지기를 기원한다”고 밝혔다.
(서울=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