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합할 수 있는 공간으로 누마루를 도입한 경북 경주시 옥산서원. 동아일보DB
서원은 16세기 중반부터 17세기까지 조선시대 지방 지식인들이 건립한 사립 성리학 학교다. 무심히 보면 전통 건축의 하나일 뿐이지만, 우리나라가 선진문화국가의 전통과 품격을 면면히 이어오고 있다는 증거다. 특히 한국의 교육 전통을 상징하는 민족 정신문화의 대표적 자산 가운데 하나라는 평가가 나온다.
‘존현양사’(尊賢養士·어진 이를 높여 선비를 기른다). 서원의 기능을 함축적으로 드러내는 말이다.
전남 장성군 필암서원에서 성리학의 대가 하서 김인후 선생을 기리는 추향제가 올 9월에 열렸다. 동아일보DB
이 같은 실천을 통해 서원은 조선의 성리학 교육과 사회적 확산을 주도했던 교육기관이자 성리학적 이상을 구현하기 위한 장소로 발전했다. 서원은 교육 시스템이자 물리적 시설이었고, 성리학자들은 서원을 사회 교화와 정치 활동 등 각종 활동의 근거지로 활용했다. 서원은 지식인들이 자발적으로 건립한 학교라는 점에서 국가 차원에서 건립한 성균관이나 향교와는 차이가 있었다.
서원은 정착하는 과정에서 건축적으로도 정형을 뚜렷하게 완성했다. 이번에 세계유산에 등재된 서원은 한국 최초의 서원인 경북 영주 소수서원(1543년 건립)을 포함해 경남 함양 남계서원(1552년), 경북 경주 옥산서원(1573년), 경북 안동 도산서원(1574년), 전남 장성 필암서원(1590년), 대구 달성 도동서원(1605년), 경북 안동 병산서원(1613년), 전북 정읍 무성서원(1615년), 충남 논산 돈암서원(1634년) 등 9곳이다. 이들 서원은 각자 개성을 지니면서도 서원이 건축적 정형성을 확립하는 과정을 드러낸다.
서원은 제향 인물의 연고가 있는 지역에 자리를 잡았고, 성리학자의 전인적 교육에 적합한 환경을 선택했다. 서원 내 제향과 강학, 회합 등 각각의 영역은 지형과 경관을 적극적으로 이용해 뚜렷한 하나의 서원 건축 전형을 완성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강당, 사당인 사우(祠宇), 누마루의 건축물을 중심으로 구성한 각각의 영역이 지형, 외부 공간, 기단, 담장, 대문 등을 이용해 유기적으로 결합했다는 점에서도 탁월하고 특출한 가치를 지닌다. 이처럼 문화전통을 건축적으로 구현했다는 점이 세계유산 등재 과정에서도 높이 평가됐다.
“옛 서원에서 미래를 향한 길을 찾는다.” ‘한국의 서원’ 9곳이 올 7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면서 서원이 상징하는 정신문화의 가치가 새삼 주목받고 있다. 사진은 경북 안동 병산서원으로 특히 만인소를 비롯한 사림의 공론장으로 서원이 활용됐다는 점을 보여주는 곳이다. 동아일보DB
서원은 민간에서, 지역에서 미래를 향해 교육의 힘을 펼쳤다는 점에서 전통 유산인 동시에 인재 양성의 나침반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바른 인성을 키워내고, 따듯한 공동체 사회를 지향하는 서원의 교육 이념과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추구하는 철학이 현대에도 울림을 준다는 것이다.
이배용 한국의서원통합보존관리단 이사장(72)은 “서원에는 제일 중요한 건 사람이라는 철학이 담겨 있다”면서 “서원처럼 심성의 인재를 키워내 사회에 선한 실천을 하도록 만드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원이 현대의 가치관 혼란을 극복할 수 있는 교육 공간이나 고품격 전통문화 학습장 등 오늘날에도 새롭게 살아 움직이는 공간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