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 남계서원
일두 정여창 선생을 기리는 경남 함양군 수동면 남계서원. 왼쪽이 묘정비각, 오른쪽이 명성당이다. 함양=강정훈 기자 manman@donga.com
제18호 태풍 ‘미탁’이 한반도로 상륙하려던 1일 오후 경남 함양군청에서 남계(灆溪)서원으로 향하는 함양로 왼쪽에 우뚝 선 백암산(해발 622.5m)이 한눈에 들어왔다. 산 정상의 기암절벽, 산허리를 두른 하얀 구름이 아름다운 산수화를 그려냈다. 황금빛이 짙어가는 들녘엔 풍요가 넘쳤다.
“남계서원은 구릉을 등진 자리에 위치해 있습니다. 서원 앞으로는 덕유산에서 시작된 남계천이 흐릅니다. 그 앞 넓은 들판 너머 안산(案山)인 백암산이 서원을 마주 보고 있습니다.”
함양 사람인 임숙조 문화관광해설사(56)의 설명은 차분했다. 그는 “남계서원은 조선 성종 때 대학자인 일두(一두) 정여창 선생(1450∼1504)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고 제향하기 위해 1552년 개암(介菴) 강익 선생 주도로 유림, 주민들이 참여해 창건했다”고 소개했다. 조선시대 두 번째 서원으로,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도 견뎌냈다. 일두는 ‘한 마리의 좀벌레에 불과하다’는 뜻으로 정여창 선생이 스스로를 낮춰 부르는 의미로 지었다. 일두 선생은 김종직 문하에서 성리학을 배웠다.
임 해설사와 서원 정문인 풍영루(風영樓)에 들어설 무렵 후드득 비가 떨어졌다. 우산을 받치고 찬찬히 서원을 거닐었다. 좌우 두 개의 연지(蓮池)를 지나자 일두 선생을 기리는 묘정비각(廟庭碑閣)이 맞아준다. 강학공간을 구성하는 중심 건물인 명성당(明誠堂)은 정면 4칸 규모. 중앙 2칸은 마루다. 양쪽 1칸은 온돌방으로 된 협실. ‘명성’은 중용의 ‘밝으면 성실하다’에서 따왔다. 학동들의 글 읽는 소리가 멀리서 들리는 듯하다.
이미연 함양군 홍보담당은 “남계서원은 제향공간을 서원 뒤에 두고 강학공간은 앞쪽에 배치하는 ‘전학후묘’ 서원건축 양식을 잘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명성당 뒤 가파른 계단을 오르자 경사지 위 높은 곳에 위치한 사당이 단아한 모습을 드러냈다. 강학 공간과 ‘적극적 분리’는 엄숙함으로 다가온다. 일두 선생을 주벽으로 좌우에 개암 강익, 동계 정온 선생 위패가 모셔져 있다.
임 해설사는 “세계문화유산 지정 이후 서원 방문객도 크게 늘어 주중엔 300여 명, 주말엔 1000명 안팎이 찾는다”고 말했다. 이창구 사단법인 남계서원 원장은 “서원에 배향된 세 분 어른의 실천유학, 나라사랑, 충효 정신을 일깨워 자라나는 후손들에게 그 뜻을 잘 전달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함양=강정훈 기자 manm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