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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익기씨 “훈민정음 상주본은 ‘개인 재산’”…국가 반환 요구 거절

입력 | 2019-10-09 13:52:00




한글날인 9일 오전 훈민정음 상주본 소장자 배익기씨(56)가 경북 상주시 낙동면 자신이 운영하는 골동품점에서 훈민정음 상주본 반환 요청 서명서와 손편지를 가지고 찾아온 고등학생들과 이야기 나누고 있다. 2019.10.9 /뉴스1 © News1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이하 상주본) 은닉 소장자인 배익기씨(56)가 상주본 국가 반환 여부에 대해 ‘개인 사유 재산’이라며 반환 의사가 없다는 기존 입장을 다시 밝혔다.

배씨는 한글 창제 573돌을 맞은 9일 경북 상주와 서울 등의 고교생들이 자신을 찾아와 상주본 국가 반환을 요청하는 면담에서 “반환은 말도 안된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당초부터 국가 것이라면 지금 제가 감옥에 있지 않겠느냐. 국가는 사유 재산(상주본)을 지켜주는 의무를 하면 되는 것”이라며 “이해관계에만 결부해서 사유 재산을 무조건 국가에 줘라고 하는 것은 문제”라고도 했다.

배씨는 “제가 상주본을 규장각 내부에서 꺼내온 것도 아니고 나름대로 노력해서 찾은 것”이라며 “당사자인 제 재산을 누가 나보다 더 안전하게 보존하려고 노력하겠느냐. 나를 두고 다른 관리인에게 상주본 보존을 맡길 이유는 없다”고 했다.

한글날인 9일 오전 상주고등학교 2학년 김동윤(오른쪽 네번째) 학생 등 고교생 4명이 경북 상주시 낙동면 훈민정음 상주본 소장자 배익기씨(56·왼쪽)의 골동품점을 찾아 배씨에게 훈민정음 상주본 반환 요청 서명서와 손편지를 전달한 뒤 이야기 나누고 있다. 2019.10.9 /뉴스1 © News1

한 학생이 “훈민정음을 창제한 세종의 정신은 ‘백성을 어여삐 여긴다’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러면 상주본을 국민들이 다 볼 수 있게 국가에 반환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하자 그는 “국가는 개인의 사유 재산을 보호해주는 의무만 하면 된다”고 답했다.

한글날인 9일 오전 상주고등학교 2학년 김동윤(오른쪽 두번째) 학생 등 고교생 4명이 경북 상주시 낙동면 훈민정음 상주본 소장자 배익기씨(56·오른쪽)의 골동품점을 찾아 배씨에게 훈민정음 상주본 반환 요청 서명서와 손편지를 전달하고 있다. 2019.10.9 /뉴스1 © News1

상주본 보관 상태에 대해 배씨는 “어떤 기준이 안전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450여년 동안 안전하게 보존된 것 같지는 않다. 박물관에서 보관하는 것보다는 분명히 안전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보존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상주본 국민반환 서명운동을 벌여온 상주고 2학년 김동윤군 등은 이날 오전 배씨의 골동품점을 찾아 상주고 전교생 416명이 서명한 서명서와 상주본 반환의 염원을 담은 학생들의 손편지 등을 전달했다.

지난 2008년 존재가 알려진 뒤 자취를 감췄던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이 불에 그을린 모습의 사진으로 공개됐다. 상주본의 소장자인 배익기씨(54)가 언론을 통해 공개했다. 공개된 상주본은 지난 2015년 3월 배씨의 주택 화재로 일부가 불에 탄 모습이었다. 책 하단 부분이 검게 그을린 모습이었지만, 본문 부분은 다행히 불길을 피해 온전한 상태였다.(배익기씨 제공) 2017.4.11 /뉴스1 © News1 DB

이날 방문에는 김군을 포함해 상주와 서울지역 고교생 4명이 함께했다.

김군은 “훈민정음 상주본을 국가에 반환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는 어른들만의 일이 아니다. 학생들도 한글 창제의 원리가 담긴 국보급 문화재인 상주본의 가치에 대해 관심이 많다”며 “국보급 유산을 개인이 소장한 채 공개하지 않은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배씨 면담 이유를 설명했다.

배씨는 학생들과 만난 자리에서 “상주본 문제가 정상화돼 보고싶다는 이야기이지 않느냐”며 “그건 저도 동감하는 부분으로 당사자로서 오히려 더 시급하게 노력하고 있다는 것만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저한테만 (상주본 반환을) 독촉하는 그런 내용은 아닌 것 같다”며 “하지만 염려했던 것 보다는 순수한 뜻으로 와서 희망사항을 전한 걸로 그 뜻을 잘 알겠다”고 덧붙였다.

배씨는 앞서 언론에 미리 배포한 ‘학생들의 오도된 서명요청에 대한 훈계답변서’라는 입장문을 통해 “십년이 넘도록 은폐와 왜곡, 거짓으로 점철하는 해례본 사건이 급기야는 학생들에게까지 오도된 방향의 압박의 이용물로 나서고 있다”며 “고등학생이면 주위 어른들의 암시·부추김·선동에 수동적으로 착실히 따르려고만 할 게 아니라 관계적 상황에 따라 다른 사정도 있을 수 있음을 염두에 두고 객관적 본연의 진실에 따라 행동하려는 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훈민정음을 창제한 세종정신의 정화인 상주본 발견·소유자로서 그 뜻을 수호·계승해 훈계의 뜻을 전한다”고 덧붙였다.

고서적 수집가인 배씨는 지난 2008년 자신이 상주본을 갖고 있다고 세상에 처음 알렸다.

하지만 골동품 판매업자 조모씨(2012년 사망)가 소유권을 주장하면서부터 긴 법적 공방과 소유권을 둘러싼 논쟁은 시작됐다.

대법원은 2011년 5월 상주본의 소유권이 조씨에게 있다고 판결했지만 배씨는 상주본 인도를 거부했다.

배씨는 이 때문에 문화재보호법 위반으로 구속(2014년 대법원 무혐의 판결)되기도 했다.

정부는 조씨가 사망하기 전 상주본을 서류상으로 문화재청에 기증했다는 점을 들어 배씨에게 상주본 소유권 인도를 요구하고 있으나 배씨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지난 7월 대법원은 상주본 소유권이 문화재청에 있다고 판결했으나 배씨는 여전히 상주본 소유권을 주장하면서 “국가가 가져가려면 상주본 가치의 10분의 1인 1000억원을 내라”는 등의 요구를 하고 있다.

상주본은 국보 제70호인 해례본(간송미술관본)과 같은 판본으로, 간송본에는 없는 표기와 소리 등에 관한 연구자 주석이 있어 학술적 가치는 간송본 이상인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한편 지난 7일 열린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문화재청은 “그동안 배씨를 45차례 만났으며 반환을 설득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날 상주본이 이미 3분의 1 이상 훼손됐다는 주장이 나오자 문화재청은 “실물을 보지 못해 모른다”고 답했다.

(상주=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