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르드족도 딱 100년 전 독립의 꿈에 한껏 부풀었던 적이 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연합국과 터키 정부가 체결한 세브르 조약은 쿠르드족의 독립 자치권을 약속했다. 하지만 3년 뒤 그 약속은 휴지조각이 돼 버렸다. 패전한 터키가 힘을 회복하고 승전국까지 태도를 바꾼 때문이었다. 특히 쿠르드 밀집지역인 모술과 키르쿠크에서 대규모 유전이 발견되면서 영국은 더 많은 석유의 안정적 확보를 위해 쿠르드족을 저버렸다.
▷이후 쿠르드족은 네댓 나라로 찢긴 채 각국 정부가 내부 불만을 달래려 동원한 외곽 때리기용 탄압의 희생양이 되곤 했다. 터키는 쿠르드족의 ‘터키화 정책’을 통해 쿠르드어 사용을 금지하고 ‘산악 터키인’이라 부르며 박해를 가했다. 이라크는 일부 자치를 허용하며 쿠르드족 회유 정책을 폈지만 저항운동이 계속되자 화학무기로 대량학살을 자행하기도 했다. 이런 탄압 속에 쿠르드족은 게릴라전쟁으로 맞서며 ‘쿠르디스탄’ 건설을 꿈꾸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쿠르드족에게 엄청난 돈과 장비가 들어갔다. 우리는 우리 이익이 되는 곳에서 싸울 것이다”라고 했다. 모든 것을 돈으로 따지는 트럼프식 셈법에 동맹의 신의는 없다. 영국 총리 파머스턴 경도 1848년 “영원한 동맹도, 영원한 적도 없다. 영원한 국익만 있다”고 했다. 예나 지금이나 냉혹한 국제정치 현실은 그대로다. 국익 앞에서 거추장스러운 동맹은 헌신짝처럼 버려질 뿐이다. 쿠르드족의 비애가 그저 남의 일일까.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