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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뒤늦은 멧돼지 소탕, 잘못된 원인 진단에 집돼지만 몰살시켰나

입력 | 2019-10-14 00:00:00


강원 철원과 경기 연천의 민통선 안 야생 멧돼지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바이러스가 11, 12일 이틀 연속 4건 확인됐다. 이달 초 비무장지대(DMZ) 안에서 ASF 감염 멧돼지 폐사체가 발견된 적은 있지만 DMZ 남방한계선 남쪽에서 발견된 것은 처음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어제 접경지역의 멧돼지를 집중 포획·사살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마리당 10만 원의 포획보상금 지급, 민간 엽사와 군 저격요원의 사살작전도 추진하기로 했다.

이처럼 접경지역 멧돼지를 사실상 모두 없앤다는 정부의 대책은 ‘실기(失期)한 뒷북 대응 아니냐’는 비판을 낳고 있다. 지난달 중순 이래 임진강 수역을 따라 접경지역에서 ASF 확진 판정이 잇따르면서 멧돼지는 이미 ‘유력한 용의자’였지만 정부는 뚜렷한 멧돼지 차단 대책 없이 사실상 방치했다. 이미 접경지역에는 ASF 바이러스가 광범위하게 번졌을 수 있다.

정부는 초기부터 멧돼지를 통한 북한으로부터의 ASF 유입 가능성을 부정적으로 봤다. 특히 멧돼지가 휴전선 철책을 뚫고 넘어올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고 멧돼지를 통한 감염보다는 불법 축산물을 통한 전파를 막는 데 집중했다. 북한에선 이미 5월에 ASF 발병이 확인됐지만 북한이 공동방역 제안에 무응답으로 일관하자 사실상 손놓고 있었던 것이다. 더욱이 환경단체의 우려를 의식한 환경부가 소극적으로 나오면서 부처 간 엇박자를 보이기도 했다.

사정이 이러니 사육 돼지에 대한 집단 도살 처분 같은 대책에 양돈업자들이 “멧돼지는 놔두고 집돼지만 손대느냐”며 반발하고 나서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국내 야생 멧돼지는 이미 30만 마리 이상으로 추정되는 만큼 체계적인 방역과 개체 수 감축이 시급하다. 정부는 뒤늦게 멧돼지의 철책 이동 외에 쥐, 새를 통한 바이러스 전파 가능성도 조사한다고 한다. 보다 철저하고 근본적인 조사와 방역을 위해 북한에도 협력을 거듭 촉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