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시국서 터진 부정, 탈법, 탐욕들… 민낯 드러낸 586 세대 비판을 넘어 공정 사회 만들 논의까지 나아가야
김석호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여름에 시작한 공방이 조석으로 쌀쌀한 바람이 부는 가을에도 지루하게 이어지고 있다. 언론은 하루의 시작을 조국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신경전으로, 마감을 여권과 야권의 힘겨루기로 채운다. 광화문과 서초동에서는 각각 조국 퇴진과 수호를 외치고, 학계도 둘로 나뉘었다. 생활 세계와 공론장 모두 조국 사태에 지배당한 현실이 씁쓸하다. 피로감을 호소하는 이도 많고 사회적 에너지의 소모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높다. 그래도 한 가지는 확실히 건졌다. 세대 유죄! 586이 문제다. 우리는 1960년대에 태어나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을 주도했고 이제 50대가 된 그들을 ‘586’으로 부른다. 이제 누구도 이들의 도덕적 차별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들에게 권력은 남았어도 권위와 정당성은 사라지고 있다. 유권자는 586이 그들의 견고한 성채를 쌓아 특권을 영속화하려 한다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다. 이 깨달음은 향후 한국 정치 지형의 변화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념적 선명성과 도덕적 우월성을 전면에 내세웠던 586에 대한 비판이 매섭다. 최근 드러난 586의 모습은 이념적으로도 모호하고 도덕적으로도 평균을 밑돈다. 여의도에서 586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큰 데 반해 30, 40대 정치인의 목소리는 희미하다는 탄식부터 정부와 대기업에서 중요한 자리를 꼭 움켜쥐고 있다는 분노에 이르기까지, 지난 두 달간 586은 다른 세대의 공적이 되었다. 단 두 달 만에 586은 그들만의 끈끈한 연결망과 이념적 동질성을 바탕으로 불평등하고 불공정한 세상을 만드는 주범이 되었고 뒤틀린 세상을 재생산하기 위해 협잡을 마다하지 않는 부도덕한 집단으로 그려지고 있다. 그러나 586의 부정과 탐욕을 의미하는 각종 자료와 세대 간 불균형에 관한 통계들은 아주 부분적인 진실만을 말해준다. 비판과 공격의 대상이 될 만한 586은 사실 한 줌에 불과한 소수이기 때문이다. 세대 내 불평등과 세대 간 불공정이 진실에 더 가깝다.
지금처럼 세대 간 불균형만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다면 진실은 은폐되고 우리는 결국 어떤 것도 얻지 못할 것이다. 586이 다른 세대에 비해 너무 많은 것을 누린다는 사실을 부정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세대 간 불균형의 문제를 한발 더 들어가 따져보면, 현재의 소란스러움과 거센 공격에 묻혀 있던, 세대 내 불평등과 세대 간 불공정한 대물림의 문제가 등장한다. 어느 한 세대가 이념적 동질성을 가지고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일사불란하게 의도적으로 행동한다는 생각은 상상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세대 담론에서 자주 거론되는 청년이나 노인의 현실, 사회적 이동성의 쇠락, 그리고 희망의 실종, 그 이면에는 항상 불평등과 불공정이 도사리고 있다. 조 장관의 행적에 대한 의혹의 핵심에도 특별한 부모가 자녀에게 자신의 위치를 물려주려고 저지른 편법과 탈법, 또는 불법이 있다. 그런데 세대 간 불균형과 갈등에만 집중할수록 분노의 본질이 무엇이었는가를 자꾸 잊게 된다.
586의 탐욕에 대한 비난으로 끝내서는 안 된다. 586에 대한 공격으로 현재의 세대 논쟁이 정리된다면 우린 다시 빈손이 될 것이다. 세대 간 균형을 요구하는 것은 어떤 변화도 만들지 못한다. 세대는 양보하지 않는다. 오히려 문제를 만들고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하는 것은 세대 내 이질성, 즉 불평등과 불공정의 문제이다. 돌고 돌고 돌아오기는 했지만, 다시 한국 사회에 확고하게 자리 잡은 불평등과 불공정의 문제를 진지하게 마주해야 한다. 우리가 청년 세대의 어려움에 공감하고 그들의 문제를 공동체 차원에서 다루는 이유는 그들이 청년이어서가 아니라 그들이 보유하고 있는 자원과 기회가 지나치게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 세대보다는 불평등과 불공정을 둘러싸고 이념적으로 정책적으로 각자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는가를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정치적으로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념정당이지 세대정당이 아니다. 이념 없는 세대는 진영논리에 매몰될 뿐이다.
김석호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사회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