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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연 하늘은 ‘정치 쇼’로 맑아지지 않는다[김세웅의 공기 반, 먼지 반]

입력 | 2019-10-14 03:00:00


일러스트레이션 서장원 기자 yankeey@donga.com

김세웅 미국 어바인 캘리포니아대 지구시스템과학과 교수

‘잘못된 전통을 개혁하려는 시도는 새로운 잘못된 전통을 만드는 것일 뿐’이라는 말이 있다. 실제로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 중 하나인 대학입시 문제만 봐도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제도가 계속 쏟아지지만 틈새를 비집고 제도를 악용하는 악순환의 사례들이 계속되는 것을 보면 완벽한 정책을 만들려는 노력보다는 가지고 있는 정책의 활용 쪽에 더 노력이 집중돼야 한다.

대기오염에 관련된 정책의 흐름을 살펴봐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환경 및 대기오염 정책은 전미에서 가장 엄격하다. 이는 로스앤젤레스 스모그 문제가 극심했던 1970년, 미 연방정부가 캘리포니아주에 연방정부의 기준보다 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할 수 있는 권한인 ‘캘리포니아 면제(California Waiver)’를 부여하였기 때문이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연방환경청은 전임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자동차 연비 기준 강화와 이산화탄소 감축 정책을 폐지하겠다고 발표하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이 정책을 소개하면서 연비 기준 강화 정책 폐지로 자동차 가격이 싸지면 대기를 오염시키는 구형 차들의 소유주들이 새 차를 쉽게 살 수 있게 되어 오히려 공기가 깨끗해질 것이라는, 농담인지 진담인지 헷갈리는 주장을 했다. 하지만 자동차 회사들은 이러한 행보를 그다지 달갑게 생각하지 않았다. 세계적인 자동차 산업의 추이에 역행하는 정책으로 산업계 전반에 불안 요인이 될 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이에 포드, GM, 도요타, 볼보 등 17개 회사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제도 폐지를 제고해 달라는 서한을 보내기에 이르렀다.

이에 더해 자동차 회사들은 공격적인 환경정책을 제시해 온 캘리포니아가 캘리포니아 면제 제도를 활용해 강화된 연비 기준을 적용한다면 특정 주에 판매할 차량만 따로 만들 수 없기 때문에 결국은 연방정부의 기준이 유명무실해질 것이라는 계산도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올해 7월 포드, 폭스바겐, 혼다, BMW가 캘리포니아주와의 비밀협상을 통해 오바마 행정부의 기준(L당 22.9km)보다는 조금 완화된 기준(L당 21.5km)을 2026년까지 적용하는 것으로 합의를 보기에 이르렀다.

이에 자존심이 상한 트럼프 행정부의 연방환경청은 지난 50년 가까이 점진적인 대기 환경 개선에 기여한 캘리포니아 면제 제도를 폐지하겠다고 9월 중순 발표했다. 석탄산업 로비스트로 활동한 전력이 있는 연방환경청장 앤드루 휠러는 “우리는 연방 제도와 각 주의 역할을 인정하지만 이는 한 주정부가 국가 전체의 기준을 정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캘리포니아 면제 제도 폐지를 설명했다. 캘리포니아주 법무장관 하비어 베세라는 “환경정책의 근간을 이루어 왔던 정책에 대한 즉흥적인 폐지 결정을 수용할 수 없다”며 행정소송을 준비하겠다고 즉각 반격에 나섰다.

우리나라의 대기 환경보전법이나 수도권 대기 환경 개선에 관한 특별법은 대기오염의 원인 그리고 이에 대한 대책에 대해 비교적 잘 정의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20년간의 대기오염물질 실측 자료를 살펴보면 분명한 대기오염 개선 효과를 가져왔음을 그렇게 어렵지 않게 살펴볼 수 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우리나라의 대기오염이 건강에 유해한 수준임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러한 문제의 해결은 그간 성과를 이룬 관련 법안을 더 강하게 적용시키는 방법을 써야 하는 것이지, 효과도 입증되지 않은 도심 고층 빌딩에 공기청정기 설치하기 혹은 물 뿌리기, 광촉매 도로 포장, 그리고 인공 강우 등의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해결될 수 없음을 기억해야 한다.

연일 리얼리티 쇼를 방불케 하는 정치판에 염증을 느끼는 미국에서는 ‘정치를 다시 지루하게’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이는 비단 미국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많은 사회적 요소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환경 문제는 영웅 같은 정치인이 하루아침에 개혁할 수 없다. 지루하게 느껴지겠지만 제도를 효과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시스템이 활성화되어야 하며 이러한 이유로 문제 해결을 위해서 ‘어공(어쩌다 공무원)’이라고 불리는 정치인보다는 ‘늘공(늘 공무원)’인 직업공무원의 위상을 높여야 한다는 생각이다.

김세웅 미국 어바인 캘리포니아대 지구시스템과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