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로 점령한 ‘저가 마케팅’ 연극
12일 오후 대학로 한 소극장 공연을 앞두고 관객들이 예매 티켓 교환, 티켓 현장 구매를 위해 길게 줄을 섰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 상업연극 전성시대… 퀄리티도 나쁘지 않아
12일 서울 대학로 한 소극장. 수년째 ‘오픈런’(끝나는 날짜 지정 없이 이어지는 공연) 코미디 연극이 무대에 올랐다. 이날 100석 규모인 객석은 절반이 좀 못 미치는 자리만 채워졌다. 공연이 임박하자 일부 극장 관계자가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행인들에게 “싸게 드릴게. 진짜 재밌어요”라며 파격적인 저가 티켓을 제안했다.
또 다른 소극장에서는 선정적 ‘성인 코미디’를 무대에 올렸다. 꽤나 수위 높은 대사가 오가는데 커플로 보이는 관객이 많다. 배우들은 짓궂은 질문으로 관객들을 당혹시키기도 했다. 역시 관객들의 만족도는 나쁘지 않았다.
상업연극의 인기몰이가 물론 최근에 벌어진 기현상은 아니다. 사실 비용을 덜 들이되 싼 티켓 값으로 관객을 유혹하는 방식은 이미 대학로의 오랜 관행. 입장료를 대폭 깎더라도 수익을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한 공연계 관계자는 “잘나가는 공연은 지방공연을 포함해 한 달에만 수천만 원대의 매출을 올리기도 한다. 정부나 예술계 지원 없이도 이미 독자적 생존법을 갖춘 작품이 많다”고 했다.
상업연극의 장르 다변화도 한몫했다. 코미디, 공포나 멜로, 성인물 등으로 세분화했다. 관객 참여를 유도하고, 퀴즈를 통해 초대권이나 상품도 나눠준다. 한 연극계 원로는 “과거엔 상업연극을 ‘뒷골목 연극’이라 폄하하기도 했다”며 “요즘은 딱히 비난하기 어려울 정도로 배우 연기나 짜임새의 수준이 올라와 놀랐다”고 했다.
○ 과도 경쟁으로 ‘제 살 깎아먹기’가 되진 말아야
12일 서울 종로구 혜화역 인근에 설치된 티켓 할인판매용 부스. 티켓 예매를 하지 않고 대학로를 찾은 사람들에게 공연 중인 연극 수십 편을 시간, 장르별로 추천해 판매한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이은경 연극평론가는 “상업성에 치중한 작품들을 무조건으로 비판할 수도 없고, 소셜커머스 경쟁을 막을 방법도 없다”면서도 “다만 배우에게 시급을 지급하며 공장에서 작품을 찍어내듯 만드는 상업공연이 기존 관객층마저 떠나보내지 않도록 최소한의 예술성, 대중성은 담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는 “연극적 품위를 고민하되 가격 경쟁을 위해 싼 좌석만으로 관객을 모으는 시장 교란 행위는 지양할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