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소년단, 사우디 사상 첫 해외가수 스타디움 콘서트 기록
11일(현지 시간)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의 킹파드국제경기장 무대에 선 방탄소년단. 이날 공연은 네이버 브이라이브를 통해 전 세계에 생중계되기도 했다. 빅히트엔터테인먼트 제공
11일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의 킹파드국제경기장. 잠깐 눈앞에선 서울 잠실종합운동장에 온 듯한 착각이 일었다. 이미 오전부터 주변은 ‘사랑해요’ ‘뽀뽀해줘요’ 같은 한글 손팻말이 물결처럼 떠다녔다. 무리 옆을 스칠 때마다 “안녕하세요” “반가워요”라며 앳된 목소리의 한국어도 쏟아졌다. 단지 ‘아바야’(이슬람 전통 검은 망토)와 ‘히잡’을 입었을 뿐.
○ “BTS도 한국도 너무 좋아요”
이날 저녁 스타디움에선 현지는 물론 한류사(史)에서도 큰 이정표를 세울 엄청난 콘서트가 열렸다. 방탄소년단(BTS)의 월드투어 ‘LOVE YOURSELF: SPEAK YOURSELF’였다. 이 공연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사상 첫 해외 가수의 스타디움 콘서트 허용이란 기록도 세웠다.
그들에겐 취재차 방문한 국내 언론마저 ‘셀럽’이었다. 단지 BTS와 같은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환영합니다” “한국에서 왔나요”라며 끊임없이 말을 걸었다. 먼저 붙잡고 “인터뷰하고 싶다”고도 했다. 함께 사진을 찍자는 요청도 많았다. 괜한 걱정에 “사진이나 영상이 언론에 나가도 되느냐”고 했더니, 바로 매무새를 가다듬고 포즈를 취했다.
중서부 항만도시 지다에서 어머니와 동생, 친구들과 공연을 보러 온 대학생 셰터 씨는 한국말로 “우리 엄마는 아줌마 아미예요”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그는 “케이팝과 한국 드라마가 너무 좋아 한국어 공부도 열심히 하고 있다”면서 “듣는 건 꽤 하는데 말하는 건 아직 어렵다”며 수줍어했다. 또 다른 대학생 나즈드 씨는 “BTS는 물론 한국 대중문화가 인기다 보니 한국 제품에도 관심이 많다”며 “한국 화장품은 요즘 사우디 여성에게 최고 인기”라고 귀띔하기도 했다.
○ 한류, 새로운 역사의 한 꼭지로
저녁 무렵 드디어 펼쳐진 방탄소년단 무대는 압도적 열기를 뿜어냈다. BTS에게도 이날 공연은 중동지역에서 처음 가진 단독 공연. 첫 곡 ‘Dionysus’로 포문을 연 뒤, 약 3시간에 걸쳐 ‘Not Today’ ‘작은 것들을 위한 시(Boy With Luv)’ ‘IDOL’ ‘FAKE LOVE’ 등 24곡을 선보였다. 3만여 관객들은 BTS 공식 응원봉을 흔들면서 뜨거운 박수와 한국어 떼창으로 화답했다. 멤버들이 아랍어 인사를 전할 때는 스타디움이 무너질 듯 함성이 넘쳐흘렀다.
공연이 끝난 뒤에도 열기는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 아미들은 좀 더 BTS를, 한국을 알고 싶어 했다. “리야드에 하루빨리 한국문화원이 생겼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국내 연세어학당을 다녔던 대학생 후사 씨는 지인들과 모임을 만들어 한국어 공부를 하고 있단다. 그는 “한국 역사나 문화를 배우려는 이가 늘고 있다. 하지만 대학의 관련 수업이나 한국어학원 등이 없어 너무 아쉽다”고 말했다.
방탄소년단은 공연 뒤 소속사를 통해 “오랫동안 기다려준 팬들을 위한 축제의 자리다. 믿기지 않는 이 순간을 만들어준 아미에게 감사한다”고 소감을 전했다. 멤버들은 “먼 곳에서 큰 사랑과 응원을 주는 걸 잘 알고 있다. 오늘 무대를 잊지 않고 영원히 간직하겠다. 공연을 생중계로 함께 즐겨준 세계 팬들에게도 감사드린다”고 했다.
방탄소년단은 이달 26, 27, 29일 서울 송파구 잠실종합운동장에서 공연을 갖는다. 지난해 8월부터 세계를 돌며 연 ‘LOVE YOURSELF’ 순회공연의 마지막 무대다.
리야드=이세형 특파원 turtle@donga.com / 임희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