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스 주한 美대사 인터뷰]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는 9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 국무부 청사에서 가진 동아일보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실무협상의 진전 없이는 제3차 북-미 정상회담도 없다’는 미국의 메시지를 분명히 했다. 방위비 분담금 문제에 대해서는 “한국이 전체 비용의 5분의 1만 감당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며 방위비 인상 기조를 재확인했다. 워싱턴=이정은 특파원 lightee@donga.com
○ 북-미 비핵화 실무협상
―스웨덴 스톡홀름에서의 북-미 대화가 결렬된 이후 양측이 밝힌 내용에 차이가 있다. 미국은 ‘창의적 아이디어’와 ‘새로운 이니셔티브(new initiative)’를 소개했다고 주장한 반면 북한은 미국이 빈손으로 왔다고 비난했는데….
“내가 그 자리에 있었던 협상가가 아니라서 정확하게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북한 말을 믿을 것인가, 아니면 미국을 믿을 것인가 묻고 싶다. 선택은 (양측 이야기를) 듣는 사람의 몫이다. 다만 내가 보기에 북한은 아무것도 하기 전에 미국이 모든 것을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북한이 회담 결렬 후 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실험 재개 가능성을 언급했고 ‘끔찍한 사변’이 날 수도 있다고 위협했다. 북한이 협상 테이블로 다시 나올 것이라고 보나? 연말 시한이 다가오고 있다.
―북한이 제3차 정상회담을 요청하면 미국은 응할 것인가.
“글쎄…. 우리는 진지한 실무협상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3차 정상회담 의향을 밝혔지만 타임라인을 설정하지는 않았다. 리더들에게 협상가의 역할을 기대할 수는 없지 않은가. 우리에게는 협상팀이 따로 있고, 이들이 어렵고 까다로운 세부사항의 대부분을 풀어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 방위비 분담금 협상
―제11차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 시작됐다. 한국에서는 5배 증액 요구가 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은 세계 12위의 경제대국으로서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고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5배의 요구가 지나치다고 하지만, 이를 뒤집어서 말하면 현재 한국이 전체 비용의 5분의 1만 감당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미국 입장에서는 충분하지 않다. 협상이 시작되면 그 중간 어디쯤에서 절충안으로 협상이 이뤄질 것이다. 문제는 시간이다. 12월 31일(제10차 협정 종료일) 까지 협상이 타결되지 않으면 현재의 협정은 없어진다. ‘내년으로 넘어가겠지’라고 기대하는 것은 나쁜 전략, 빈약한 전략(poor strategy)이다.”
―한국 정부가 26개 주한미군 기지 조기 반환 추진 계획을 발표했는데….
“15개는 지금 당장도 반환 가능하다. 그냥 열쇠를 가져가면 된다. 나머지는 진행 중이며, 준비되면 반환할 것이다.”
해리스 대사는 이 대목에서 청와대의 주한 미군기지 조기 반환 추진계획을 언론을 통해 접한 사실을 언급하며 “내가 아는 모든 정보는 대부분 신문에서 얻는다”고 말했다. 웃음을 섞은 말이었지만 한국 정부가 이런 이슈와 관련해 미국과 충분히 협의하지 않는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셈이다.
○ 미국의 대중 전략
―중국은 건국 70주년 기념식에서 각종 첨단무기를 선보이며 ‘중국의 힘’을 과시했다. 중국의 굴기에 대한 미국의 대응 전략은 무엇인가.
―미국의 화웨이 수출 규제 등 미중 간 기술패권 경쟁은 앞으로 장기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이에 어떻게 대응해야 한다고 보는가.
“미국은 화웨이 같은 백본(backbone·중추)이 구축된 네트워크가 가지는 위험성을 친구와 파트너들, 특히 우리 동맹들이 이해하도록 알려주고 있다. 당신의 시스템 공급자가 정부의 과잉 통제에 노출돼 있다면, 이는 당신의 네트워크 보안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중국은 한국에 너무 가까운 대국이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도입 당시의 보복 조치가 반복될 가능성도 있다.
“미국은 한국의 유일한 동맹국이다. 당연히 우리는 동맹국인 한국을 보호한다.”
―미국이 최근 시리아 내 미군 철수를 결정하면서 동맹인 쿠르드를 ‘토사구팽’시켰다는 비판이 나온다. 한국 같은 다른 동맹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는데….
“비관론자들이 그렇게 말할 거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철통같은(ironclad) 동맹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시리아 상황과는 다르다. 이것(철군 결정)이 한국이나 일본 호주처럼 (상호방위) 협정을 맺고 있는 나라들에 적용될 가능성은 없다. 그걸 걱정할 필요는 없다.”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 약력
△1956년 출생
△미 해군사관학교, 옥스퍼드대 국제정치학 석사
△2009∼2011년 미 해군 제6함대 사령관
△2011∼2013년 미 합동참모본부 의장 보좌관
△2013∼2015년 미 해군 태평양함대 사령관
△2015∼2018년 미 태평양사령부 (현 인도태평양사령부) 사령관
△2018년 7월∼ 주한 미국대사
▼ “지소미아 파기 결정은 실수… 철회 기대” ▼
정보공유약정은 실시간 작동 안해… 한일 갈등 풀 기회 흘려보내선 안돼
해리 해리스 주한미국대사는 종료일(11월 22일)이 다가오고 있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파기와 관련한 한국 정부의 결정에 대해 ‘실수(mistake)’라고 말하며 철회를 바란다는 뜻을 밝혔다.
해리스 대사는 이날 인터뷰에서 “지소미아 종료로 지역 안보에 차질(setback)이 빚어지게 된다”며 “우리는 한국 정부가 그 결정을 철회하기를 바라고 있고, 그러기를 권고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사일 방어만 해도 실시간으로 상황을 판단해 결정을 내려야 하는 만큼 ‘시간’이 절대적인 핵심 요소라는 것. 그는 “지소미아는 한일 양국이 중간자 없이 군사정보를 직접 교환할 수 있게 해준다”며 “이것만이 21세기의 속도전에서 우리가 싸울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강조했다.
한국 정부가 한미일 정보공유약정(TISA)으로도 충분히 정보 공유를 할 수 있다고 밝힌 것에 대해서는 “TISA는 실시간으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미국의 생각과 다른 입장을 듣고 놀랐다고도 했다.
그는 22일 열리는 나루히토(德仁) 일왕의 즉위식이 한일 갈등을 풀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물론이다. 모든 게 다 계기이고 기회가 될 수 있다”며 “이런 기회들을 흘려보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한국과 일본이 동북아시아에서의 안보 패권 문제를 가장 우선순위에 놓기를 바란다”며 “한미일 3국 협력의 완결성(integrity)은 가장 중요한 것으로, 모든 다른 이슈를 뛰어넘어야 한다고 믿는다”고 덧붙였다.
워싱턴=이정은 특파원 lightee@donga.com